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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을 22대 국회에서 다시 원점부터 논의하게 되면 공론화 과정에 시간과 예산을 또 낭비하게 되는 겁니다.”
올 1월부터 방사성폐기물학회장을 맡고 있는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입법이 무산되면 아무도 고준위 특별법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정파를 떠나 고준위 특별법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했으나 국회 임기가 코앞으로 다가와 결국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며 정치권이 남은 임기 6일 동안 최대한 처리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 회장은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첫 단계부터 고민했어야 하는 의무이고 원전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떠나 현실의 문제”라며 “우리 사회가 원전을 이미 가동하고 있는 만큼 폐기물 관리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원자력 건설뿐 아니라 폐기물 관리와 원전 해체까지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핵연료 전 주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제도를 갖추기 위해 고준위 특별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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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는 오랜 기간 높은 열과 방사능을 배출해 밀폐된 별도 시설에 저장해야 한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에 들어간 후 46년간 25기의 원전이 가동됐는데 아직 영구 처리 시설은 마련되지 않았다. 그동안 사용후핵연료는 1만 8600톤 이상 쌓였다. 현재는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 시설에 잠시 쌓아둔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빛 원전 내 저장 시설은 2030년, 한울 원전 저장 시설은 2031년에 포화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고리 원전은 사용후핵연료를 같은 시설에 더 많이 보관할 수 있도록 조밀 저장대를 설치해 2028년으로 예상됐던 포화 시점이 2032년으로 미뤄졌다.
정 회장은 “경주에서 2015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중저준위 방폐장 사례를 보면 2005년 유치지역지원특별법이 제정되고 2008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이 제정된 것이 건립의 성공 요인이었다”며 “고준위 방폐물 관리 시설 설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개입되고 수십 년 이상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하는 만큼 근거 법률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행정력으로 폐기물 처리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데 주민 의견 수렴과 지역 지원 등 절차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으면 지역마다 지원 정도에 차이가 생기거나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며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초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또 “고준위 방폐물 관리의 선도국인 핀란드·스웨덴·프랑스·스위스·미국 등의 사례를 보면 입법부가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이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폐기물 처리 시설 확보는 전기요금 안정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정 회장은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 공간이 포화되면 원전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고 천연가스 등 다른 발전시설을 가동하면 발전단가가 비싸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현재 지어진 원전을 운영하는 게 가장 저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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