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독주 체제에 맞서 국내 OTT들의 반란이 거세지고 있다. 국내 주요 OTT 티빙과 웨이브 합병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최대 규모 OTT 사업자 탄생을 예고했다. 또 티빙과 쿠팡플레이가 아시안컵부터 한국프로축구(K리그), 한국프로야구(KBO) 등 팬층이 두터운 스포츠 중계권을 따내면서 최근 토종 OTT의 이용자 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티빙과 웨이브 합병이 늦어도 내달 중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이르면 이달이나 내달 중 본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본계약 체결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가 남아있어 올 하반기에나 합병 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CJ ENM과 SK 스퀘어는 지난해 말 티빙과 웨이브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그동안 세부 내용을 조율해왔다. CJ ENM은 티빙의 최대 주주고, SK 스퀘어는 웨이브의 최대 주주다. 당초 계획대로 합병 후 티빙이 주도권을 갖게 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현재 협의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합병이 예정대로 완료되면 국내 최대 규모 OTT가 탄생하게 된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산 점유율은 34%로 넷플릭스(35%)와 1%포인트(p) 차이다. 아이지에이웍스 마케팅클라우드의 OTT 앱 트랜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티빙 점유율은 21%, 웨이브는 13%다. 더욱이 티빙과 웨이브를 합산한 앱 사용 시간은 넷플릭스를 뛰어넘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3월 마지막 주 티빙과 웨이브 앱 총사용 시간은 2368만1047시간으로 넷플릭스(1911만2261시간)보다 약 1.2배 더 많았다.
업계는 대체로 두 OTT의 합병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진 경쟁 상황에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토종 OTT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이뤄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제작사 입장에서 거대한 국내 OTT의 탄생이 단기적으로는 제작비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OTT를 견제할 국내 OTT가 존재하는 것이 제작사의 글로벌 협상력을 상승시키고 다양한 판로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수익성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토종 OTT가 이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스포츠 중계권’을 승부수로 내세웠다.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있는 외산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맞서기 위해서다. 일단은 국내 두터운 스포츠 팬들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지난 1월 OTT 이용 빈도를 조사한 결과 아시안컵을 중계한 티빙과 쿠팡플레이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안드로이드와 iOS의 OTT 앱 월간 활성 이용자(MAU) 수는 지난 1월 티빙이 656만4000명으로 작년 12월(583만명)에 비해 12.6% 증가했다. 쿠팡플레이는 778만5000명으로 한 달 전(723만1천명)보다 7.7% 늘었다.
반면 디즈니플러스의 1월 MAU는 302만1000명으로 작년 12월의 336만3000명보다 10.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시장 1위인 넷플릭스도 1281만9000명이 이용해 한 달 전(1306만1000명)보다 1.8% 줄었고, 웨이브는 441만6000명이 이용해 거의 차이가 없었다.
최근에는 티빙·웨이브·쿠팡플레이 등 토종 OTT들의 합산 점유율이 넷플릭스 등 외산OTT를 추월하기도 했다. 티빙은 지난 3월 KBO 독점 중계를 시작했고, 쿠팡플레이도 K리그 경기를 온라인에서 독점 중계하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 마케팅클라우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국산 OTT 앱 사용자 점유율은 57%로 외산 OTT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합한 수치(43%)를 넘어섰다. 넷플릭스가 지난해 3월 47%에서 지난달 35%로 대폭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쿠팡플레이와 티빙은 각각 8%p, 4%p씩 증가한 23%, 21%를 기록했다.
특히 KBO 중계 시작 이후 티빙의 신규 설치 건수는 3월 기준 약 71만 건으로 넷플릭스(약 29만건)의 2.5배에 달한다. 2월(약 46만6000건)과 비교해도 큰 폭으로 증가해, KBO 중계권 확보가 신규 앱 설치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선 쿠팡플레이가 스포츠 중계권 확보에 처음 두각을 나타냈다. 쿠팡플레이는 K리그, 스페인 라리가 등 축구 중계를 통해 초기 MAU를 상승시켰고, 이후 축구 이외에 호주 프로농구 NBL, 미국 프로풋볼리그 NFL 등을 중계하면서 영역을 넓혔다. 또 2024년 MLB 월드투어 파트너로서 6경기를 중계했고 F1 그랑프리를 국내에서 처음 현장 중계하기도 했다. 올여름 토트넘과 바이에른 뮌헨을 초청한 ‘2024 쿠팡플레이 시리즈’가 발표되자 큰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손흥민과 김민재가 각각 뛰고 있는 유럽 최고 명문 구단이 서울에서 맞대결하게 된 것이다.
티빙도 스포츠 중계권 확보에 과감한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티빙은 독일 프로축구 리그 분데스리가(Bundesliga)는 물론 테니스, 격투기, 복싱 등을 디지털 독점으로 중계했다. 최근 티빙이 KBO 리그 독점 중계권을 획득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티빙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KBO 리그 국내 유무선 중계방송권 및 재판매권을 획득했다. CJ ENM은 3년 동안 총 1350억원을 KBO에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균 금액은 450억원으로 이전 계약 기준 연평균 금액(220억원)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쿠팡플레이의 선전은 분명 스포츠 중계에 힘입은 영향이 크고, 티빙도 스포츠 중계를 확대하면서 가입자 확대와 이용 시간 증대에 활용하고 있다”면서 “국내 OTT 사업자들은 스포츠 중계권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고, 2024년은 국내에 OTT가 도입된 이후 스포츠 중계권 확보가 경쟁 지형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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