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북에디터 박단비] 언제 생애 첫 빵을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집에 항상 빵이 넘쳐났던 기억은 있다. 엄마가 퇴근길마다 양손 가득 빵을 사 오셨기 때문이다.
엄마의 빵 봉투 속에는 단팥빵, 소보로빵, 밤식빵, 크림빵, 피자빵, 모닝빵 등 셀 수 없는 종류의 빵이 들어있었다. 그중 나는 겉이 달큰하고 퍼석한 소보로빵이나 달달한 밤만 골라 파먹을 수 있는 밤식빵, 대놓고 달달한 크림이 한가득 들어있는 초코소라빵 같은 것을 선호했다.
이 선호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삼삼하고 담백한 식빵, 바게트, 크루아상, 그 외 식사 대용으로 만들어진 빵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 맛도 안 나는 빵을 왜 돈 주고 산담?’
그러다 어느 순간 크루아상이 맛있어졌다. 무언갈 바르지 않고도 식빵, 모닝빵을 즐기게 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소금빵의 매력도 느끼게 되었다. 달달하고 크림이나 요상한 토핑들이 잔뜩 올라간 빵들보다 이상하게 담백한 빵에 더 군침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바게트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내 기억 속 바게트는 참 먹기 사납고, 열심히 저작운동을 하는 것 대비 큰 만족감이 없는 빵이다. 겉이 너무 딱딱했고, 말라비틀어졌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나마 파스타 국물에 푹 적시거나 수프에 푹 찍어 먹어야 먹을만했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 입천장이 까지거나 한 번 입에 넣을 때마다 부스러기들이 온 사방에 퍼지는, 아-주 불편한, 손이 가지 않는 놈.
그래서 책 <바게트 : 근 손실은 곧 빵 손실이니까>를 집을 때 멈칫했다. 바게트와 사랑에 빠진 ‘바친자(바게트에 미친 사람의 준말)’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바게트를 먹을 수 있는 빵이라고도 취급하지 않는(?) 내가 이런 책을 읽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때는 마침 여행하기 전, 여행지에서 가볍게 읽을 책을 고르던 중이었다. 마음이 넓어지는 여행지에서만큼은 바게트를 향한 이 날선 마음도 좀 사라지지 않을까? 나는 들뜬 마음으로, 평소라면 펼치지 않았을 이 책을 가방에 넣었다.
저자는 정말로 바게트에 미쳐있었다. 얼마나 미쳤냐면 바게트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운동을 했다. 건강해야 더 오래 바게트를 먹으니까. 바게트를 더 즐기기 위해 오븐을 구입하고 효모를 키우고 빵을 만들었다. 그래야 더 맛있는 바게트를 먹을 수 있으니까. 책을 읽는 내내 코에서 묘한 꼬순내가 났다. 계속 침이 고여 연신 침을 삼키기도 했다. 바게트가 이렇게 매력적인 빵이었다고?
책을 덮으며 나의 바게트 경험을 돌아봤다. 나는 여태 무슨 바게트를 먹었던 거지? 나는 바게트가 정말 무슨 맛인지는 알고 있는 건가? 바게트만 돈 주고 사 먹어 보기나 하고 평가를 했던가? 바게트에만 너무 박했던 건 아닐까?
이상하게 여행을 다녀와서도 바게트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느 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바게트 생각을 끊을 수 없어 단숨에 집 앞 빵집으로 내달렸다. 그집 구석에 바게트가 세워져 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그날만큼은 다른 빵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우선 첫입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바삭, 쪼올-깃. 이게 바게트의 맛이라고? 고소한 맛과 향이 나를 감쌌다. 몇 개를 더 집어 허겁지겁 입속에 넣고 난 뒤에는 함께 산 생크림에 바게트를 푹 찍었다. 달큰한 맛이 추가되었다. 이렇게 먹어도 맛있잖아? 맨 바게트 몇 입에 생크림 찍은 바게트 몇 입을 돌려가며 먹었다. 아주 길어 보였던 바게트가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느꼈다. 고작 몇 번의 경험과 편견으로 이 맛있는 빵을 놓치고 살았다니!
만약 당신도 바게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길 바란다. 물론 언제든 바게트를 구매할 수 있는 근처 빵집에서 본다면 더욱 좋다. 부디 당신도 이 고소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북에디터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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