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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칼럼] ​중국과의 외교에 ‘침묵’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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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바이든의 대중 관세폭탄, 표심 잡기일까, 중국 잡기일까?

중국과 반도체, AI 규제 등 기술전쟁으로 일관하던 바이든 정부가 5월 들어 느닷없이 대중 관세폭탄을 투하했다. 철강 25%, 반도체와 배터리 50%, 전기차 100%의 관세인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상징적인 100% 관세인상을 한 전기차의 경우 중국의 대미전기차 수출은 거의 없다. 배터리는 미국이 생산하지 않는다. 철강은 2019년에 트럼프가 때렸던 중국산 25% 보복관세의 범주 안에 있다. 반도체가 사실 전기차보다 더 심각한데 그 시행시기를 보면 2025년이다. 대선 끝나고 보자는 얘기다. 바이든의 대중무역정책의 속을 들여다보면 이는 관세폭탄이 아닌 말폭탄으로 실효성이 낮다.

바이든 정부는 기술전쟁 하다 말고 왜 갑자기 무역전쟁을 하는가. 답은 바이든 지지율에 있다, 최근 6개월간 바이든 지지율은 트럼프를 넘어선 적이 없었는데 4월 들어 1% 내외의 박빙으로 그 격차가 줄어들었다가 5월 들어 다시 확대되고 있다. 조급해진 바이든은 트럼프 지지층인 러스트벨트 표심 잡기로 전기차에 관세폭탄을 때린 것이다.

남의 것 베껴서 2등은 할 수 있지만 1등은 어렵다. 트럼프와 쌍둥이처럼 닮은 바이든의 대중 관세폭탄 정책은 성공할까? 주가를 보면 답이 있다. 미국의 고율 보복관세로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을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업체 BYD, 배터리업체 CATL, 태양전지업체 론지(Longi)의 주가를 보면 별 변화가 없다. 주가가 말해주는 바이든의 대중 관세폭탄은 중국 잡기가 아니라 미국 표심 잡기다.

문제는 대미흑자, 대중수입의존도가 커진 한국의 무역구조

한국은 2023년에  93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무역에서 181억 달러 적자를 냈지만, 대미흑자는 444억 달러로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2024년 들어 한국의 대중수출 비중은 2018년 27%에서 19%로 낮아졌고 대미수출 비중은 2018년 12%에서 19%로 높아졌다. 

한국의 대중수출 비중은 낮아졌지만 반대로 한국의 대중수입 비중은 2018년 20%에서 21%로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의 대미수출 호조에 따른 대중국 원자재 수입이 더 빨리 늘어난 때문이다. 한국의 대중국 원자재 수입의존도를 보면 반도체가 43%, 배터리는 83%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개념은 바이든과는 다르다. 정치꾼 바이든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가 친구이지만 장사꾼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여주고 미국의 재정적자를 메워주는 미국국채를 많이 사 주는 나라가 친구다.

대중국 수출이 부진한 지금 한국의 대미흑자 급증은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트럼프의 재집권 시에는 무역전쟁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고 무역흑자가 급증한 나라를 시범케이스로 손보는 일이 벌어지면 한국이 그 대상에 포함될 리스크가 있다.

미국은 지금 중국과 경제전쟁에서 반도체, AI 기술 봉쇄를 하는 등 ‘기술의 창’으로 중국을 공격하고 있지만 반면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은 미국에 ‘자원의 방패’로 대항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은 첨단산업에 필수재인 세계희토류의 61%,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의 핵심원자재 80~90%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 길들이려고 닭을 잡아 피를 보여준다(殺鷄儆猴)”는 말이 있다. 싸움판 옆에 서 있다가 엉뚱한 이가 피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에 대항해 원자재 통제에 들어가면 대중국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원자재수급문제로 제품생산이 어려워지면 급증하던 대미흑자 역시 사상누각처럼 사라질 수 있다. 중국은 이미 희토류와 반도체에 들어가는 각종 원자재의 수출통제조치를 만들어 놓고 있지만 아직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 “닭”이 될 위험성 피해야

한국은 미·중의 무역전쟁 속에서 어떤 경우에도 ‘닭’이 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외교에서 한·미동맹이 든든한 병풍인 것은 맞고 병풍이 바람은 막아줄 수 있지만 장사를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미국의 우방으로 미국의 대중전선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중요하지만 중국에서 손실을 만회해줄 보상은 없이 보초만 서는 것은 피해야 한다.

미국의 쿼드 동맹인 호주, 미국의 나토동맹인 독일과 프랑스는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동맹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각자의 이익에 부합한 대중외교를 해 실리를 철저히 챙긴다. 쿼드동맹 호주는 미국으로부터 핵잠수함기술을 전수받았지만 정권 바뀌고 중국과 교착상태였던 무역을 정상화해 실익을 챙겼다. 전 세계가 반중정서로 들끓는 상황에서도 경제가 어려운 독일 총리는 두 번이나 방중해 실리를 챙겼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2023년 4월 중국을 방문해 20여 건의 계약을 따냈고, 이번 5월 시진핑의 유럽방문에서 경제적 실리를 또 챙겼다.

가치를 이념화 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생기는 것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은 단 한번도 사회주의 중국과 이념의 동지, 사상의 친구였던 적이 없다. 6·25전쟁 때 적으로 싸웠던 중국과 우리가 1992년 이후 30여 년간 친구로 사귀었던 것은 철저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한국은 시장과 생산기지가 필요했고, 중국은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중관계는 철저한 이해관계다. 최근 수년간 한·중관계의 악화, 반중정서의 악화는 근본적으로 “돈 되면 친구이고 돈 안되면 남”이라는 이해관계의 방정식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 있어 수출기지로 중국의 역할은 다했지만 원자재 조달기지로 중국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한국은 이제 중국을 ‘중동’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석유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지금 한국은 반도체, 전기차에 필요한 핵심소재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재 국산화는 중요하지만 그것은 장기적인 문제이고 당장 반도체, 전기차에 필요한 핵심소재에서 중국 이외의 대체지를 구하기 어렵다.

한국은 미 대선 이후 2025년을 대비한 플랜B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가치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훼손될 수 없는 것이지만 한국 경제에서 중국의 경제적 중요성도 낮게 평가할 수 없다. 미·중관계가 날로 엄중해지는 상황에 중국과의 외교에서 침묵은 위험하다. 위험한 침묵을 깨뜨리고 유사시를 대비해 중국과 소통의 창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때마침 한·중·일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린다. 주석인 시진핑이 아니라 서열 2위인 리창 총리가 오지만 중국과의 소통창구 복원 채널로는 충분하다.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은 중국과의 새로운 외교와 경제관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1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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