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한국 주둔 비용 중 한국 정부가 부담할 몫을 정하는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2차 회의가 21일 오전 서울에서 시작됐다. 이날부터 사흘간 이어지는 회의에는 1차 회의 때와 동일하게 한국 측에서 이태우 외교부 방위비 분담 협상대표가, 미국 측에서 린다 스펙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이 각각 수석대표로 나선다.
앞서 양측은 지난달 23∼25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1차 회의를 열고 서로의 기본 입장을 확인한 바 있다. 한 달 만에 열리는 2차 회의에서는 분담 금액과 유효 기간, 책정 기준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협상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번 SMA 협상은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진행되는 만큼 양국 간 팽팽한 의견이 오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미국 정부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공정하고 공평한 결과”를 협상 목표로 제시한 가운데, 한국에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달 초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한·미동맹에 대한 강력한 투자”라며 추가 인상 필요성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한 이례적으로 이번 협상이 기존 협정 만료로부터 1년 8개월이나 앞서 시작되면서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미국에서 SMA는 행정 협정으로 간주돼 대통령 결단에 따라 일방적인 파기가 가능하다. 협상 시작 시기와 별개로 협상 결과가 뒤집힐 우려는 여전하다.
SMA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서 한국이 부담할 금액을 규정하는 협정이다. 주한미군지위협(SOFA) 제5조는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경비를 미국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예외 조치로서 SMA를 체결해 1991년부터 한국도 주한미군 유지 경비의 일부를 분담하고 있다.
한국이 내는 분담금은 △인건비(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 △군사건설비(시설 건설 지원) △군수지원비(용역 및 물자지원) 등 3개 항목에 사용된다. 인건비는 전액 현금, 군수지원비는 전액 현물로 투입한다. 군사시설 건설비는 설계와 감리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를 현물로 지원하는 데 그 비율은 88%다. 이 분담금 대부분은 한국 내 경제로 환류되는 효과가 있다는 게 양국 정부의 판단이다.
한·미는 2021년에 2020∼2025년 6년간 적용되는 11차 SMA를 타결한 바 있다. 11차 SMA에 따라 정해진 방위비 분담금은 1조1833억원으로 전년(1조389억원) 대비 13.9% 오른 금액이었으며, 이후 4년간 매해 국방비 인상률을 반영해 올리기로 했다. 이에 양국은 매년 한국 국방비 증액에 맞춰 인상키로 했으며, 11차 SMA가 종료되는 내년에 한국은 약 1조5000억원을 분담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부터 12차 SMA를 체결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12차 SMA 협상 회의 결과는 2026년부터 적용된다.
한편, 협정은 통상 기한 만료 1년 정도를 앞두고 개시된다. 11차 협정의 경우 전체 6년 중 아직 2년이 남았다. 현시점에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냐’는 질문에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미군 병력에 대해 사실상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있다”면서 “왜 우리가 한국을 방어해야 하나, 한국은 부자 나라인데 왜 돈을 내지 않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실제 2만8500명인 주한미군 규모를 ‘4만명’, ‘4만2000명’으로 계속 틀리게 말한다거나, 한국이 매년 1조원 넘게 부담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다고 하는 등 사실과 다른 발언도 쏟아내고 있다.
그의 발언이 대통령 재임 당시 추진했던 정책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 주한미군 철군이 이뤄질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9년 11차 SMA 협상 때 당시 한국 분담금의 6배에 가까운 50억 달러(약 6조 8195억원)를 증액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터무니없는 요구로 교착되던 협상은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인 2021년 타결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실제 어떤 정책이 채택될지 미지수지만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주미대사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위비 관련 발언 등을 두고 트럼프 측에 다양한 경로로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가급적 정확한 주한미군 관련 인식과 ‘팩트(사실)’를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러한 소통이 미국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신중하고 중립적으로 접근한다는 방침이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주미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한·미동맹은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제도화된 협력의 연속선상에서 계속 강화될 것”이라며 “우리 대사관과 정부는 어떤 상황에도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이 지난달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진행한 SMA 1차 회의 당시 한국은 ‘합리적 수준의 분담’을, 미국은 ‘방위태세 유지를 위한 분담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분담금 책정 방식(소요충족형·총액형) △인상률 연동 구조 등을 두고 양국이 눈치싸움을 벌일 전망이다.
분담금 책정 방식에서 한국이 택한 ‘총액형’은 방위비의 총액부터 우선 합의한 뒤 지출 세목을 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과 SMA를 맺는 유일한 나라인 일본은 ‘소요형’을 따른다. 이는 구체적인 지출 세목에 따라 총액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에 책정 방식을 바꾸길 바라지만, 소요형을 따른다고 해서 한국 측 분담금이 반드시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사용처를 보다 투명하게 관리하고 양국 간 정치 상황에 따라 협상이 휘둘릴 가능성이 줄어들 순 있다.
분담금 인상률 연동 구조도 관건이다. 11차 당시 연간 물가상승률이 아닌 국방비 증가율을 처음 연동하면서 논란이 됐었다. 국방비 증가율을 방위비 분담금 인상률에 연동하면 과거보다 인상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방위비 분담금은 2021년 1조1833억 원에서 2025년 약 1조5000억 원 수준으로 대폭 인상됐다.
앞서 외교부는 회의 일정을 발표하며 “정부는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마련과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강화를 위한 우리의 방위비 분담이 합리적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 하에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펙트 대표는 지난 18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과 만나 “SMA 협상은 우리 동맹의 중요성, 두 나라의 관계, 그리고 서로에게 주는 지지에 관한 것”이라며 “좋은 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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