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연말 정기인사 기간이 아닌데도 반도체 사업부(DS부문) 수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대외 반도체 위기 상황을 극복하면서 ‘초격차’ 리더십을 다시금 확보하려는 이재용 회장의 결단이 배경에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이번 인사는 경 사장이 먼저 사임의 뜻을 드러냄으로써 성사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좌천이나 경질은 아니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경 사장) 본인이 의사를 밝혔고 이사회 보고도 마쳤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경 사장은 앞으로 미래사업기획단장 겸 삼성종합기술원장(SAIT)으로 회사 경영보다 연구개발과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와 메모리 생산능력(캐파) 격차가 컸던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은 생성 인공지능(AI)으로 수요가 폭증한 HBM(고대역폭 메모리) D램 시장에선 삼성전자를 오히려 앞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내년 HBM 생산분까지 미국 엔비디아 등에 완판한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HBM3E(5세대) D램 엔비디아 공급 여부조차 불확실하다. 대안으로 AMD·인텔·브로드컴 등에 HBM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엔비디아만큼 구매력이 높진 못하다.
삼성전자의 자랑이었던 D램 기술력도 경쟁사와 격차가 크게 좁아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1c(10나노급 6세대) D램을 양산할 계획인데, SK하이닉스도 비슷한 시기에 10나노급 6세대 D램 양산을 결정하고 관련 장비 반입을 시작했다.
LPDDR(저전력) D램은 퀄컴·애플 등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HBM D램 생산량 확대로 생산능력 유지가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은 미국 정부로부터 64억 달러 보조금을 유치하며 3㎚(나노미터) 미만 초미세공정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TSMC와 시장 점유율 격차를 좀처럼 좁히진 못하고 있다. 퀄컴·엔비디아·AMD·테슬라·구글 등 미국 빅테크를 초미세공정 고객으로 유치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회사 내부에선 노조와 갈등 봉합이 숙제다. 삼성전자 5개 노조 가운데 가장 노조원 수가 많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사측이 제안한 평균 5.1% 임금 인상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쟁의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오는 24일에는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에서 대규모 집회 개최를 예고하며 사측을 압박할 계획이다. 전삼노는 지난해 삼성전자 DS사업부 OPI(초과이익성과급) 0% 지급을 계기로 DS사업부 직원들을 노조원으로 흡수하며 세를 크게 불렸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전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이끌게 함으로써 산적한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 부회장은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강점이 큰 인물로 알려졌다. 2008년 50나노급 D램 개발을 이끌고 20나노와 19나노급 D램 개발에도 기여함으로써 삼성전자가 일본 메모리 업체들을 제치고 메모리 1위 기업 신화를 쓰도록 했다.
2017년부터 삼성SDI를 이끌며 배터리 분야도 달성했다. 전 부회장의 결단으로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했고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앞서고 있다.
전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DS부문은 무엇보다 기술 경쟁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여길 전망이다. 우선 차세대 HBM D램 개발에 가용가능한 모든 물적·인적 자원을 투입함으로써 엔비디아 핵심 파트너로서 지위를 공고히 할 것으로 예측된다. D램의 경우 10나노급 7세대 D램과 한자릿수 나노공정 D램의 조기 양산 가능성도 점쳐진다. 두 D램을 조기 양산하면 HBM D램 용량을 확대함으로써 HBM 초격차 확보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파운드리 사업의 경우 GAA(게이트 올 어레이) 기반 초미세 공정 확대와 함께 2.5D 첨단 패키징(반도체 결합) 공정 고도화와 3D 첨단 패키징 조기 상용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 퀄컴, 엔비디아, AMD 등이 자사 최신 반도체를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양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TSMC와 초미세 공정 점유율 격차를 좁히는 전략을 펼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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