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 계절의 여왕 등으로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담스러운 달’이 눈에 띈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날, 스승의 날, 그리고 동학혁명기념일, 5.16, 5.18로 이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여기에 더해 5월을 노래한 음악, 시, 수필 등 예술작품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중략)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로 시작하는 피천득(1910~2007)의 수필 ‘오월’은 신록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한다.
동요 ‘과수원길’에도 나오는 아카시아꽃이 여느 해보다 더 많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질투하듯 폭풍을 동반한 폭우가 이달 초순부터 지구촌 곳곳을 할퀴고 있다. 지난 7일 브라질 최남단 히우그란지두술주(州)의 3분의 2 이상 도시 절반이 물에 잠겼고, 최소 136명 사망에 1000여 명이 실종되었다. 중국 광둥(廣東)성, 미국 텍사스주, 케냐는 지난 3월부터 계속된 홍수로 267명이나 사망했고, 우리나라 남녘에서도 폭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경향신문, 5.13).
5월에 걷기가 가장 좋다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지난달 23일 출발한 지인 부부가 드디어 산티아고에 입성했다고 한다. 그 소식과 함께 지난 15일 단톡방에 올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에서 부부는 파란 하늘 아래 오리털 패딩 차림으로 웃고 있었다. 설악산에 눈이 40cm나 내렸다는 기상특보 이틀 후인 19일은 초여름 날씨였다.
기후변화, 기후 위기가 드디어 인권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2016년 ‘기후 보호를 위한 여성 시니어 클럽’은 자국인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세 번이나 제기한 기후소송에서 원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당하자, 2020년 유럽인권재판소(ECHR,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소재)에 소송을 제기한다. 그리고 올해 4월 9일(현지 시각) 스위스가 온실가스 배출억제 등 기후정책을 소홀히 해 고령자 인권을 침해했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받게 된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생명, 건강, 복지와 삶의 질에 미치는 심각한 악영향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의 권리를 침해했음을 판결문에 적시했다고 한다(한겨레, 4.9).
우리나라에서도 4월 23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대심판정에서 기후소송 첫 공개 변론이 열렸다. 헌법이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정부의 노력이 기후 위기 대응에 충분치 않아, 환경권·생명권·건강권 등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소송이다. 2020년 3월 기후환경단체 ‘청소년 기후 행동’ 활동가 19명이 당시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문제 삼으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약 4년 만이다. 제1차 공개 변론은 헌재에 제기된 다른 기후소송 3건(환경단체연합과 기후 위기 비상 행동 등 시민 123명이 제기한 시민 기후소송, 2022년 영유아 62명 명의로 제기된 아기 기후소송, 2023년 정치하는 엄마들이 제기한 기후소송)과 병합해서 열렸다.
이종석 헌재 소장은 변론에 앞서 “기후소송인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정부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청구인들의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라며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기후소송이 제기돼 다양한 결론이 나온 바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최근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이 불충분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선고한 바 있어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며 “재판부도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인식해 충실히 심리하겠다.” 고 밝혔다.
기후변화 대응과 헌법적 권리를 헌재에서 다투는 공개 변론이 열린 것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첫 사건이라고 한다. 청구인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구체적인 기준을 법률에 명시하지 않은 채 행정부에 위임한 것은 위헌이고, 2030년 이후 정부의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2031년부터 2042년까지는 세부 감축 계획이 아예 없고 연도별 대책도 없으며, 앞선 계획들이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할지 계획도 없다는 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미래 세대에 과도한 감축 부담을 떠넘긴다는 것 등이 변론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 측은 파리협약이 우리의 헌법적 가치보다 상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나라가 처한 사정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이 높아 즉각적 감축이 어렵다며,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줄이겠다는 감축 목표는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또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의 연도와 산업구조, 감축을 시작한 시기 등이 달라 그 나라 실정에 맞게 감축 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기후재난 개연성만으로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변론을 했다(헌법재판소 보도자료 참조).
필자는 이번 1차 공개 변론을 보고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기후소송이 세계적인 추세로 가고 있고, 환경규제에 관한 각국의 기후변화 입법화가 활발해지면서, 눈치 백 단인 법무법인(law firm)들이 기후변화를 차세대 먹거리로 만들어 가고 있다.
만약, 이번 헌재 판결이 정부의 안일한 기후 위기 대응으로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이 침해되었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그러지 않아도 걸핏하면 법원으로 달려가는 세태에 ‘소송 공화국’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해 본다. 오늘(5월 21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제2차 공개 변론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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