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운동이 낳은 정치국 위원의 중도 퇴임 러시
금년 5월은 베트남 정치 격변의 달이었다. 공산당이 제9차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근 2년 동안 퇴임한 공산당 정치국 위원들의 공석을 채운 것이다. 2021년 1월 말부터 임기를 시작한 제13기 공산당 정치국은 18명의 위원 중 6명이 중도 퇴임한 기록을 남겼다. 이전에는 임기 중간에 퇴임한 정치국 위원이 한두 명에 불과했는데, 이처럼 전체 위원의 3분의 1이나 중도 하차한 적은 없었다. 이는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비서(서기장)가 주도한 반부패운동의 결과다. 여기에서 공산당 정치국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베트남 정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베트남에서는 정치국 위원들이 국가기관의 주요 직위를 담당하기에, 이들의 변화는 정치체제 변화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예컨대 공산당 정치국 서열 2위 인사가 국가주석, 3위 인사가 총리, 4위 인사가 국회의장을 맡는다. 보통 국가기관 고위 지도자들의 인사는 먼저 공산당이 단독 후보를 지명한 후 국회가 인준하는 절차를 거친다.
최근의 정치적 격변은 2023년 초 팜빈민, 부득담 두 부총리가 퇴임한 것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이 사임하면서 시작됐다. 보반트엉 공산당 비서국 상임비서가 작년 3월에 국가주석직을 맡았지만, 그도 올해 3월에 퇴임했다. 이후 브엉딘후에 국회의장, 쯔엉티마이 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 겸 비서국 상임비서의 퇴임이 이어졌다. 이보다 앞서 쩐뚜언아인 공산당 중앙경제위원회 위원장도 중도 퇴임했다. 이로써 최고위 직위인 공산당 총비서,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 중 두 자리나 공석을 남겼다. 제13기 정치국에서 중도 퇴임한 위원 중 테크노크라트는 4명(팜빈민, 응우옌쑤언푹, 쩐뚜언아인, 브엉딘후에), 당 전임자는 2명(보반트엉, 쯔엉티마이)이었다. 여기에 정치국 위원이 아닌 부총리 및 장관급 인사를 포함하면 고위 지도부에서 테크노크라트의 쇠퇴는 더 분명해진다. 중도 퇴임한 공안과 군부 출신 최고위 인사는 없었다.
이들의 퇴임 과정을 보면, 모두 본인들이 사임을 요청하고 공산당이 이를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형사 처벌 대상이 된 인사도 없었다. 퇴임하는 지도자들의 면모를 살리는 형식이었다. 공산당은 퇴임하게 된 지도자들의 퇴임 이유로 당원 및 지도자로서 결점을 나타냈고 이들의 잘못된 행동이 공산당과 국가의 위신을 훼손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들의 퇴임 이유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주로 그 비서 또는 하급자의 부패와 관련해 책임을 지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부패에 연루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공안-군부 우위의 새 정치국 진용
공산당은 지난 5월 16일 중앙집행위원회 제9차 회의를 열어 정치국 위원 4명을 새로 선임했다. 제13기 정치국 위원이 당초 18명이었지만 6명이 중도 퇴임하고 4명이 새로 선임돼 현재 16명으로 됐다. 이 회의에서 쯔엉티마이 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 겸 비서국 상임비서가 돌연 자진 사퇴하면서, 르엉끄엉 군 정치총국 주임이 상임비서직을 맡았다. 이번에 새로 선임된 정치국 위원은 레민흥 당 비서국 중앙사무처장, 응우옌쫑응이어 당 중앙선전교육위원회 위원장, 부이티민호아이 당 중앙동원위원회 위원장, 도반찌엔 베트남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주석(위원장)이다. 새로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된 인사 중 레민흥 당 중앙사무처장은 테크노크라트 겸 당 전임자라고 할 만한 인사다. 그는 공공정책을 공부했고 국가은행 총재를 역임했으며 당 중앙사무처장을 맡아 왔다. 응우옌쫑응이어 당 중앙선전교육위원회 위원장은 군 출신이며, 부이티민호아이 당 중앙동원위원회 위원장은 당 감찰 계통, 도반찌엔 베트남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주석은 소수종족 출신으로 지방 행정 및 당 간부 경력을 갖고 있다.
이로써 공산당 정치국은 응우옌푸쫑 총비서, 또럼 국가주석, 팜민찐 총리, 쩐타인먼 국회의장, 르엉끄엉 당 서기국 상임비서, 응우옌반넨 호찌민시 당 위원회 비서, 딘띠엔중 하노이시 당 위원회 비서, 판딘짝 당 중앙내정위원회 위원장, 쩐껌뚜 당 중앙감찰위원회 주임, 판반장 국방부장관, 응우옌호아빈 최고인민법원장, 응우옌쑤언탕 호찌민국가정치학원(아카데미) 원장, 레민흥 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 겸 중앙사무처장, 응우옌쫑응이어 당 중앙선전교육위원회 위원장, 부이티민호아이 당 중앙동원위원회 위원장, 도반찌엔 베트남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주석으로 새 진용을 갖췄다. 현 정치국 위원 16명 중 공안 출신은 5명, 군 출신은 3명으로, 이 두 부문 출신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분류하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당 전임자는 4명 또는 5명이나, 테크노크라트는 딘띠엔중, 레민흥 2명에 불과하다. 최근 베트남의 정치적 격변으로 공산당 정치국 내 공안 및 군부 세력의 강화와 테크노크라트의 쇠퇴는 분명해 보인다.
정치적 격변과 권력구도의 변화
5월 18일 당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마치며 응우옌푸쫑 총비서와 팜민찐 총리, 국가주석 후보 또럼 공안부 장관, 국회의장 후보 쩐타인먼 국회부의장, 르엉끄엉 당 비서국 상임비서, 레민흥 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 겸 중앙사무처장이 회합했다. 이들이 제13기 최고위 지도부 인사들이며 이들 중 일부는 2026년 초에 시작하는 차기 최고위 지도부 후보들이라고 여겨진다.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세 임기를 맡았고 건강상 이유로 차기 지도자로 또 나서기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팜민찐 총리는 2021년 초 제13기 당 정치국과 제15기 정부 출범 시 중도 퇴임하리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번 임기 말까지는 총리 직무를 수행할 듯하다. 또럼 공안부장관이 국가주석으로 부상한 점이 두드러진다. 또럼 국가주석은 응우엔푸쫑 총비서가 적극적으로 수행한 반부패운동의 최대 수혜자다. 또럼이 경찰과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합친 공안의 수장으로서 캐비넷 열쇠를 쥐고 그 안에 쌓아 놓은 최고위 정치지도자들의 파일을 하나씩 공개한 셈이다. 현재로서는 그가 차기 총비서 후보로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그는 공산당 정치국 및 중앙집행위원회 내에서 동의를 얻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의 당 중앙집행위원회 내 신임도는 비교적 높지 않다고 알려졌다. 제13기 당 중앙집행위원회 회기 중간회의에서 있었던 신임투표에서 그에 대한 신임 비율은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군부와의 협력이 또럼의 차기 총비서 추대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해 5월 당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르엉끄엉 군 정치총국 주임이 당 비서국 상임비서로 선임되고 또럼 공안부장관이 국가주석으로 추천된 것은 일견 공안과 군부 간의 타협으로 보이나 양자 간 균형을 취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응우옌푸쫑 총비서가 용호상박 구도를 만들었다고 평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공안과 군부 간 협력의 기조가 2026년 초로 예정된 제14차 공산당대회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현재 또럼이 차기 총비서 후보로 가장 유력하나 단독 후보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2021년 초 제13차 공산당대회를 앞둔 상황을 떠올려보면,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당시 당 비서국 상임비서였던 쩐꾸옥브엉을 차기 총비서 후보로 추대하고자 했으나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해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베트남은 공산당 내 ‘민주화’가 제법 진전된 국가다.
한편, 베트남 정치지도자들의 세대교체는 헛된 일이 됐나? 2021년 초 제13기 정치국이 출범하면서 보반트엉, 쩐뚜언아인 등 ‘붉은 씨앗’ 젊은 세대 정치인들의 등장이 베트남 정치체제의 변화를 예고한 것 같았다. 이들이 중도 퇴임하면서 두드러진 젊은 세대 지도자의 수는 적어졌다. 레민흥, 쩐시타인 하노이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이 현직에 남아 있다. 차세대 최고위 정치지도자로 이번에 정치국 위원이 된 레민흥을 주목해볼 수 있다. 레민흥은 공공정책을 공부하고 국가은행 총재를 역임한 테크노크라트였지만 이후 공산당 비서국 중앙사무처장을 맡으며 당 전임자가 됐다. 이번에 정치국 위원이 되면서 동시에 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선친이 공안부장관을 지냈고 형이 공안으로 있어, 그가 공안 부문과의 협력을 잘 해낼 수 있는 인사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로의 교체는 2026년 초 제14차 공산당대회를 지켜봐야겠다.
이번 새 정치국 출범은 그간의 정치적 격변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2026년 초에 열릴 14차 공산당대회를 향한 권력 경쟁의 또 다른 시작이 됐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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