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용 전해액 제조사인 엔켐의 전환사채(CB) 보유자들이 주식 전환 청구 기간이 돌아오자마자 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이 주식이 언제 매도 물량으로 쏟아져 나올지 주주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엔켐은 올 들어 주가가 4배 가까이 급등하면서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5위로 뛰어올랐다. CB 발행 당시보다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채권자들이 이를 주식으로 바꿔 차익 실현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엔켐이 지난해 5~7월 세 차례에 걸쳐 발행한 CB는 총 1915억 원에 달한다. 해당 CB는 모두 12개월 후부터 전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모두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전체 발행 주식의 약 14%에 해당하는 대규모 물량이다. 엔켐 주주 사이에선 잠재 매물 부담 때문에 주가가 짓눌릴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왔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13일 엔켐의 11회차 CB 중 193억 원어치에 대한 전환 청구권이 행사됐다. 11회차 CB는 엔켐이 지난해 5월 11일 315억 원 규모로 발행한 것이다. 당시 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IBK캐피탈·트러스톤자산운용 등 기관 투자자가 투자했다.
1년 후인 이달 11일부터 전환 청구가 가능해지자마자 그중 193억 원 규모 CB에 전환 청구권이 행사됐다. 전환가액은 7만2603원으로, 전환된 주식이 이달 말 상장되면 20일 종가(30만7500원) 기준 4배 이상 차익을 낼 수 있다. 11회차 CB 중 남은 122억 원어치도 전환 청구 기간이 끝나는 2028년 4월 전까지 언제든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여기에 12회·13회차 CB도 줄줄이 주식으로 전환돼 매물로 나올 수 있다. 엔켐이 지난해 6월 발행한 1100억 원 규모 12회차 CB는 6월 2일부터, 지난해 7월 발행한 500억 원 규모 13회차 CB는 오는 7월 7일부터 전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식 전환이 이뤄질 경우 전체 발행 주식의 10%가 넘는 물량이다. 12회·13회차 CB의 전환가액은 각각 6만8048원, 7만711원으로, 20일 종가 기준 최고 4.5배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해당 회차 CB 물량 역시 증권사·사모펀드 등 기관 투자자가 보유 중이다. 증권가에선 전환 시점까지 현 수준의 주가가 유지된다면 이들이 주식으로 바꾼 후 수익을 실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일반 주주들이 ‘매도 폭탄’을 우려하는 이유다.
엔켐은 CB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 대부분을 미국 법인 설비 투자와 원재료 매입 등 시설·운영 자금으로 썼다. 미국이 중국 회사가 생산한 전해액을 배터리에 쓸 경우 세액 공제 혜택을 없애기로 하면서 엔켐이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전 세계 전해액 점유율 1~3위를 차지하는 중국 기업들이 저가 공세를 펼친 영향으로 엔켐 실적은 후퇴했다. 올해 1분기(1~3월) 엔켐 매출은 781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 대비 46% 감소했다. 이 기간 118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내면서 적자 전환했다. CB 등 파생 상품 평가 손실액이 커지며 1분기 2986억 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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