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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20] 엄마,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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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아이가 단추를 풀었다가 잠그는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더니 뜻대로 되지 않는지 드러누워 운다. “그럴 땐 ‘엄마, 도와줘’라고 하면 돼. 엄마가 도와줄까?” 하며 다가간다. 내 손으로 아이 손을 보조하며 단추를 풀어준다.

지난달 남편이 말했다. “우리 엄마한테 매일 와 달라고 할까?” 이게 벌써 서너 번째다. 나는 그동안 “아니”라고, “어머님은 피곤하시면 안 된다”고 거절해 왔지만, 이번엔 차마 반대하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도움이 필요했다.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평일 거의 매일 아이와 함께 있어 주시기로 했다.

내가 도움 청하길 망설인 이유는 어머님이 작년에 심장 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심장 질환 가족력을 염려하던 어머님은 스스로 몸의 이상을 느끼고 대학 병원에서 비용이 꽤 드는 건강검진을 받으셨다. 그래서 종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의사는 보통 사람들은 이런 종양의 존재를 알지 못하다가 그것이 떨어져 나가 혈관을 막고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건강검진으로 이를 발견한 것 자체가 큰 운이었다고.

그러나 수술은 그 자체로 얼마나 몸에 큰 부담이 되는지, 특히 노인의 몸에 가벼운 수술은 없으며 회복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연로한 부모를 둔 나이대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어머님은 굳이 말씀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까지 이른 사연을 몇 번씩 구구절절 이야기하셨다. 당신 가족력과 최근 몇 년 동안 느꼈던 증상, 즉 왜 그렇게 비싼 건강검진을 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그 이야기 끝은 늘 “내가 너희에게 폐가 되면 안 되잖니?”로 마무리하셨다.

그러나 어머님 바람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모는 결국 자식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고 자식에게 의존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렇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부담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가 생기면서 내 삶의 중심은 완전히 달라졌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몸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태어난 후 일상은 또 어떤가. 나는 전처럼 원하는 만큼 잠을 자고 아무 부담 없이 편안히 쉴 수가 없다. 금전적으로 각종 육아용품 구입과 발달 치료비에 돈이 나가기 때문에 내 필요는 늘 뒷전이다.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아이가 흘려 놓는 것을 닦고 사고 치는 걸 수습하며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 투성이다.

나도 남편도 한 때 부모에게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존재이다.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아기로 태어나 노인으로 생을 마감하는 인간의 삶에서 어떤 순환을 느끼곤 한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는 삶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님의 폐를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우리 부부는 그만큼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었나 보다. 돈을 벌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으니 번듯하게 자립한 줄 알았는데, 부모님 보살핌이 여전히 필요했다. 우리는 여러 방법으로 애를 써 보았지만 결국은 “엄마, 도와줘” 하게 됐다.

어머님은 겨우 되찾은 당신의 일상을 기꺼이 포기하시고 우리에게 달려오셨다. 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육아가 한결 수월해졌다.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외로움이 사라졌다. 기분 탓일까? 아이도 부쩍 밝아지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많아진 듯하다.

어머님의 피로가 눈에 보인다. 그런데도 어머님 도움 없이 잘해 나갈 자신이 없다.

그뿐이랴? 며칠 전 어머님께서 반찬 몇 가지와 함께 두둑한 봉투를 건네셨다. 아무 걱정 없이 세 식구가 편하게 여행 좀 다녀오라고 말씀하신다. 아, 우리는 언제쯤 어머님께 폐가 되지 않는 자식이 될까.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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