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규모를 키우려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메르세데스-벤츠 앨라배마 공장에서 노조 결성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이에 UAW가 명예회복을 위해 인근에 있는 현대차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독려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HMMA·Hyundai Motor Manufacturing Alabama)에서 근무하는 약 4000명의 근로자들은 이르면 다음 달 UAW 가입 여부를 놓고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2005년 미국에 제조 공장을 지은 후 줄곧 무노조 경영을 해왔다.
20일 미국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에 따르면 숀 폐인(Shawn Fain) UAW 회장은 벤츠 공장의 노조 가입이 무산된 후 “이번 패배는 뼈아프지만,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릴 것”이라며 “계속해서 전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페인 회장이 언급한 ‘전진(forward)’이 현대차에 대한 압박 강화를 의미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UAW는 지난 13일 미국 앨라배마주의 한 교회에서 현대차 공장 근로자들이 UAW 가입을 독려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집회에 참석한 몇몇 현대차 직원들은 제한된 화장실 사용 시간과 여름철 높은 온도에서 근무하는 열악한 환경 등을 언급하며 UAW 가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벤츠의 노조 가입이 무산됐기 때문에 UAW 입장에서는 세력 확장을 위한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현대차가 UAW에 가입하면 미국에 진출한 아시아 자동차 기업 중 최초라는 상징성이 있다. UAW의 압박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 표심을 공략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UAW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 UAW는 지난해 말 현대차 미국 법인(HMA·Hyundai Motor America) 등 3개 회사가 노조 결성을 무력화하고 있다며 전미 노동관계위원회(NLRB)에 신고하는 등 회사 측을 압박하고 있다.
그간 현대차는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성을 높여 북미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사인 올리버 와이먼이 지난 2022년 조사한 자동차 공장 생산성 평가에 따르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차량 1대를 만드는 데 24.02시간이 걸려 북미 지역에서 생산성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서는 차량 1대 생산에 21.93시간이 걸리는 푸조시트로엥(PSA)의 프랑스 소쇼(Sochaux) 공장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다만 현대차의 UAW 가입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완성차 ‘빅3(제너럴모터스, 포드, 스텔란티스)′가 있는 디트로이트를 포함한 ‘러스트 벨트’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경합하는 지역이 많다. 반면 현대차 등 외국계 완성차가 밀집한 미국 남서부 ‘선벨트’는 공화당 우세 주가 많은 편이다. 이에 선벨트는 전통적으로 노조 활동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본부장은 “현대차 노조가 UAW에 가입하면 미국 자동차 제조사 빅 3처럼 UAW와 산별 교섭을 벌여야 한다”며 “임금을 비롯해 차종 생산량을 조절할 때마다 노조와 협상을 해야 하면 시장에 민첩하게 대응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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