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월 중 공매도를 일부 재개하겠단 뜻을 밝힌 것과 관련해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작년 11월 공매도 전면 금지를 선언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 불법 공매도 차단 시스템 구축, 글로벌 투자은행(IB) 전수조사’를 약속했다. 이 3가지 중 제대로 마무리된 게 아직 하나도 없는데 이 원장이 공매도 재개를 언급하는 건 시장 기만이라는 게 투자자들의 지적이다.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콘래드 다운타운 호텔에서 열린 ‘인베스트 K-파이낸스’ 투자설명회(IR)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당국의) 계획은 6월 중 공매도를 일부 종목에 한해 재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이 ‘개인적 욕심’이라는 전제를 깔긴 했지만, 이 발언을 접한 개인 투자자들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한 개인 투자자는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에 “작년에 정부가 공매도를 금지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했는데,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어떤 것도 아직 마무리된 게 없다. 그런데 벌써 공매도 재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맞느냐”는 글을 적었다.
투자자들은 정부가 공매도 제도 개선과 관련해 이런저런 큰 그림을 발표하긴 했으나, 진척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일례로 금융위원회는 공매도를 금지하는 동안 기관과 개인 간 공매도 조건 차이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조건은 상환 기간과 담보 비율 등 두 가지다.
공매도는 타인에게 빌린 주식으로 매도 주문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주식을 빌리는 과정이 선행돼야 해 타인에게 빌린 주식을 갚아야 하는 기간(상환 기간)과 주식을 빌릴 때 잡히는 담보(담보 비율)가 공매도 조건의 핵심이다. 현재 개인의 상환 기간은 90일, 담보 비율은 120%로 기관(상환 기간 제한 없음·담보 비율 105%)보다 공매도를 하기 불리한 환경이다.
이에 지난달 정부는 개인의 조건을 기관과 통일하는 안을 발표했다. 개인의 상환 기간과 담보 비율을 수정하려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하위 규정을 수정해야 하고 중개기관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물밑에서 관련 규정을 다듬고 있지만, 이 원장이 공매도 재개 시기로 언급한 다음 달까지 마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국이 상환 기간·담보 비율 수정을 불법 공매도 중앙 차단 시스템(NSDS)과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NSDS를 구축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NSDS는 모든 기관 투자자의 잔고 변동을 집계하는 중앙 차단 시스템이다. 기관의 자체 잔고 관리 시스템과 한국거래소의 KRX매매체결시스템을 연결해 차액을 잡아내는 방식이다. 가령 특정 기관의 자체 잔고 관리 시스템엔 100주밖에 없는데 이 기관이 거래소에 150주 주문을 냈다면 두 수치를 모두 알고 있는 NSDS는 50주의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는 모든 기관 투자자가 자체 잔고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또 NSDS에 연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금융당국이 기관 투자자들에게 의무를 부과하려면 자본시장법에 관련 내용이 있어야 한다. 시스템 구축과 연결도 만만치 않은 과정인데, 국회 동의를 얻어 법까지 개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금융당국 내부적으로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NSDS를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이달 20일부터 시작되는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개정안에 즉시 합의했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부의 글로벌 IB 전수조사 약속도 아직 진행 중인 사안으로 결과가 다 나오지 않았다. 현재 금감원은 전체 외국인 공매도 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14개 IB를 조사 중인데, 조사가 마무리된 IB는 HSBC와 BNP파리바 등 2곳에 불과하다. 556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한 것으로 조사된 두 회사는 과징금 265억원을 부과받았다.
나머지 12곳 중 7곳에 대해 금감원은 불법 공매도 혐의를 발견해 구체적인 종목과 위반 금액을 특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IB 7곳의 공매도 위반 금액은 1556억원이다. 징계 절차는 시작도 안 했다. 그리고 5곳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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