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734조원에 달하는 기업부채의 주된 요인을 부동산업 대출로 지목하며 경고장을 날렸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동산업에 기업부채가 과도하게 쏠려 있다는 지적이다. 빚이 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투자로 이어져야 하는데 비생산적 부동산으로 대부분 투입되면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기업부채가 우리 경제 선순환 구조를 일으키도록 변화하기 위해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부동산업 대출의 점진적인 디레버리징을 유도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일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국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부채는 2023년 말 2734조원으로 본격적인 증가세가 시작된 2018년 이후 1036조원이나 급증했다. 기업부채의 명목GDP 대비 비율(이하 기업부채 레버리지)은 지난해 말 122.3%로 2017년말(92.5%) 대비 29.8%포인트 뛰었다.
다른 주요국은 대부분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GDP 대비 기업부채가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부채 레버리지는 주요 39개국 중 2017년말 중상위권(16위)에서 2023년 9월 말에는 8위 수준으로 높아졌다.
한은은 기업부채가 증대된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부문 신용공급이 확대 △개인사업자 코로나 금융지원 △업황부진에 따른 영업자금 수요 등을 꼽았다. 특히 부동산 경기 활황으로 부동산 투자와 개발 수요가 크게 확대되면서 금융권의 부동산업 관련 대출잔액이 2018~2023년 중 301조원까지 폭증한 영향이 가장 컸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기업부채 증가규모의 29% 수준으로 분석된다.
국내 부동산 관련 부채 증가는 주요국과 비교해서도 크게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된다. 2010년대 이후 주요국의 부동산업 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5~10%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5%로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때문에 2017년 13.1%로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이던 우리나라 GDP 대비 부동산 대출잔액의 비율은 지난해 24.1%로 높아졌다. 2022년 말 기준 유로지역(14.7%), 호주(12.0%), 미국(11.3%), 영국(8.7%) 등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이 빚을 내 투자 수익을 높이는 기업활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부문에서 부채가 확대된 점은 우리나라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류창훈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과장은 “부동산 부문에서 부채가 크게 확대된 것은 전체 국가경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업종별 GDP 대비 대출공급 비중을 나타내는 대출집중도를 보면 부동산업의 대출집중도가 여타 업종을 크게 상회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국내외 통화정책 기조 전환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신용공급이 부동산 부문으로 재차 집중되지 않고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기업의 경우 대기업을 중심으로 부채 증가세가 확대되긴 했지만 올해는 반도체, 2차 전지 등 주력 산업의 업황이 개선되면서 점차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건전성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상위 30대 대기업집단의 경우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부채가 연평균 7.5%(347조원) 증가하긴 했지만 자기자본 역시 6.4%(418조원) 증가하면서 부채비율이 2017년 말 68.8%에서 2023년 말 73.2%로 4.4%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반기업의 경우도 부채의 질이 떨어진 건 위험 요소다. 전체 일반기업 차입 부채 대비 한계기업(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기업) 부채의 비율은 2021년 말 14.7%에서 2022년 말 17.1%로 높아졌다. 류 과장은 “한계기업이 부채를 통해 연명하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지 않도록 과도한 금융지원을 지양하고 회생가능성에 기반한 신용공급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