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놓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현대해상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 참전을 선언한 가운데, 보험사로는 유일하게 현대해상이 이름을 올렸기 때문.
현대해상의 인터넷은행 진출 선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과 2019년에도 도전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업계 관심은 현대가(家) 3세로 현대해상의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CSO)를 맡고 있는 정경선 전무에게 모아진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정경선 전무는 제4인뱅 도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해상이 제 4 인터넷은행 출범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정경선 전무의 경영능력을 입증할 대표사례가 될 것이라고 업계에선 관측하고 있다.
1986년생인 정경선 전무는 그간 보험업과는 연이 멀어 보이는 사회·환경 문제 해결에 10년 넘게 매진해왔다. 운영이나 기획, 전략 등이 아닌 ‘지속가능경영'(Susutainability)책임자를 맡은 것과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임팩트 투자회사(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업에 투자하는 회사)를 설립해 운영했다.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 산불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기후 위기를 더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고 봐서다.
2012년 소셜벤처를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루트임팩트를 만든 데 이어 ▲소셜임팩트 전문 투자사 에이치지이니셔티브(HGI) ▲임팩트·지속가능성·ESG 투자를 테마로 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실반캐피탈매니지먼트를 설립하는 등 사회사업가와 같은 길을 걸었다.
현재 록펠러 자선 자문단 이사와 커뮤니타스아메리카 이사회 의장, 리질리언트 시티즈 네트워크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및 임팩트 투자 역량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다.
언뜻보면 회사 경영과 무관해 보이는 이러한 행보에 대해, 업계에선 “보험업의 특성에 비춰보면 무관치 않다”고 진단한다. 실제 그가 사회적 활동에 발 벗고 나선 배경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보험업의 위기의식을 근간에 뒀다는 후문이다. 정 전무는 대학원 과정 중 마주한 기후변화 데이터를 보고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먼저 초토화될 분야가 보험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지속가능 관심, 회사 경영으로 보폭 넓혀
정경선 전무의 개인 사업 운영에는 부친인 정몽윤 회장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정몽윤 회장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루트임팩트에 28억원을 출연했다. 본인이 보유한 주식 239만4400주를 담보로 내주면서 200억원가량의 자금을 조달해 주기도 했다. 자식의 경영수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정몽윤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정몽윤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전문경영인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고 있다. 정 전무 개인의 성과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굵직한 사업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며 조직 내 존재감을 확실히 다지고 있다. 현대해상 10개 본부 중 디지털전략본부,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본부를 총괄하고 있다.
그가 CSO로서 소화한 첫 공식 석상은 지난 2월 SK텔레콤(SKT)과의 인공지능(AI) 협약이다. 국내 최대 SKT와 ‘인공지능(AI) 동맹’을 결성하는 성과를 취임 한 달만에 이뤄냈다.
협약은 AI 기반 보험 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한다. 현대해상 보험 비즈니스에 SKT의 다양한 AI 기술을 적용해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SKT AI 언어 모델인 ‘에이닷 엑스(A.X)’ LLM을 보험 업무에 적용해 AI 콜센터 및 챗봇 서비스를 구축한다. 현대해상 구성원 전용 LLM(거대언어모델) 프로세스 구축 등 업무 효율성 제고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인터넷 은행 진출은 한 단계 높은 미션이 될 전망이다. 신한·우리은행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시장 경쟁이 더욱 격화됐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두 은행의 투자 방식이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압박감이 상당할 것으로 분석된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자본금 확보가 더욱 중요해진 만큼 컨소시엄 추가 참여자 물색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해상은 국내 1호 개인신용 중금리 대출 핀테크 스타트업 ‘렌딧’을 필두로 ▲세금 환급 플랫폼 삼쩜삼을 운영하는 ‘자비스앤빌런즈’ ▲외환 송금과 결제 스타트업 ‘트래블웰렛’ ▲AI 헬스케어 서비스 ‘루닛’ 등과 ‘유뱅크(U-Bank) 컨소시엄’을 꾸렸다. 단순 재무적투자자(FI) 이상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컨소시엄 참여사 대부분이 핀테크업체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사업적·재무적 안정성을 책임져야 한다.
실속없는 성과를 내세우기보다는 실제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냈는지에 초점을 두고 영업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 꾸준한 자기검열을 거쳐야 한다는 정 전무의 확고한 철학이 현대해상 DNA에 이식될 것으로 보인다.
승계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구체화된 방식은 보이지 않는다. 성인이 된 직후부터 현대해상 주주로 이름을 올리며 꾸준히 보유주식수를 늘려왔지만, 추가 지분율 확보가 필요하다.
그는 증여받은 현금으로 2021년까지 주식을 매입해 왔다. 이후 추가 지분을 매입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정 CSO의 현대해상 지분율은 0.45%(40만6600주)다. 현대해상 최대주주는 정몽윤 회장으로 지분 22.0%(1968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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