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주변에 윈드시어(급변풍·Wind Sheer)가 감지됐습니다. 착륙을 취소하고 복행(復行·비행을 재개)한 뒤 재착륙하겠습니다.”
기장의 설명과 함께 김포공항에 착륙하려던 비행기가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상공 4000피트(약 1.2㎞)까지 상승한 비행기는 재설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하다 다시 착륙 절차에 돌입했고, 조금씩 속도를 줄이며 안전하게 활주로를 밟았다.
지난 16일 서울 마곡동에 있는 이스타항공 본사에서는 비행훈련 장치(Flight Training Device)를 이용한 가상 조종 훈련이 진행됐다. B737-8 기종의 조종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형태의 훈련 장치 내부는 모든 계기판과 버튼이 실물 크기로 구현돼 있었다.
부기장석에 탑승해 보니 장치 앞쪽에 설치된 반구(半球) 형태의 스크린에서 표시되는 바깥 풍경이 기체의 움직임과 완벽하게 연동됐다. 소음과 진동도 실제 비행과 비슷하게 구현했다.
이스타항공이 최근 도입한 이 훈련 장치는 항공기 엔진 고장, 급변풍,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등 비행 중 발생 가능한 100개 이상의 비정상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구현할 수 있다.
이날 장치 조종을 맡은 김병준 이스타항공 운항훈련팀 기장은 “운항 중 플랩(날개에 달린 양력 발생 장치)이 갑자기 내려가지 않거나, 유압장치가 고장 나거나, 착륙 이후 갑자기 엔진에 불이 붙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성해 훈련에 적용하고 있다. 매년 전반기와 후반기 두 번에 걸쳐 조종사들이 테스트를 받고, 통과하지 못하면 퇴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영난으로 지난 2020년 3월 운항을 중단한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3월 항공기 3대로 국내선 운항을 시작했고, 9월에 국제선 운항도 재개했다. 현재는 B737-8 항공기 4대, B737-800 항공기 6대 등 총 10대의 기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5대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보유 기종 2종에 대한 비행훈련 장치 도입은 2022년 3월부터 추진됐고, 지난해 12월 설치를 마쳤다. 올해 4월에는 장치 2대 모두 국토교통부로부터 ‘가’ 등급 비행훈련 장치로 지정돼 실제 운항 승무원 훈련에 투입되고 있다.
이날 다른 B737-800 기종 훈련 장치에서는 이스타항공 정비사들이 엔진 런업(시운전·Run up)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대처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정비 인력도 조종사 못지않게 다양한 상황을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하다.
교육을 맡은 박종윤 이스타항공 정비기획팀 부장이 시뮬레이터 뒤에 설치된 컴퓨터 장치로 핫 스타트(과열 시동·Hot start) 상황을 부여하자, 계기판에 나타난 엔진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삑, 삑” 경고음과 함께 붉은 경고등이 번쩍였다. 박 부장은 정비사들에게 “이런 경우에는 빠르게 엔진을 끈 뒤 작업을 중단하고 직접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운항 승무원 채용 과정에도 장치를 사용한다. 최근 진행된 신입·경력직 조종사 채용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은 부기장석에 탑승해 다양한 상황에 대한 테스트를 받았다.
이스타항공은 올해 경영 목표를 ‘무결점 안전’으로 삼았다. 재운항 이후 지금까지 무사고 운항을 이어오고 있다. 조중석 이스타항공 대표는 올해 사내 신년사에서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어떠한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안전과 관련해서는 한 점의 오점도 남기지 말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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