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몇 년 전에 실크로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여러 특별한 경험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중국 투르판에서 체험한 폭염을 선택하겠다. “더워서 죽겠다”는 말은 화염산의 불타오르는 열기를 경험해 보기 전에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
투르판은 중국에서도 여름철 기온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출발하기 전에 여행사에서 안내문을 보내왔는데 거기에 ‘투르판은 한낮 기온이 40도를 넘으니 미리 대비하기 바란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걸 보고 “에구머니나, 40도라니. 그대로 바비큐가 되는 건 아닌가 몰라.” 하며 겁먹었다. 그러나 그조차 잘못된 정보였다, 40도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50도가 넘었으니 말이다.
중국 뉴스를 보니 내가 여행 중이던 7월 10일 투르판 최고 기온이 49도를 기록했다고 나왔다. 그런데 가이드 설명은 약간 달랐다. 중국은 한여름의 경우,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기온보다 3~4도를 높여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게 관례라니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하여간 그러니까 7월 10일 진짜 온도는 50도가 넘었다는 말인데, 하필 그날 투르판을 여행했다. 게다가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인 오후 두 시 무렵 나는 화염산에 있었다.
투르판은 화염산(火焰山)이 유명하다. 화염이란, 불길을 내뿜는 ‘화염방사기(火焰放射器)’에 쓰이는 바로 그 단어 아닌가. 화염산은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활활 불타는 산을 만나 나아가지 못하다가 파초선을 빌려다가 불을 껐다는 이야기에 나와 유명하다. 옛날에도 화염산 주변은 불길이 활활 타는 것처럼 혹독하게 끓었던 모양이다.
여행자로서 문학 작품 속의 배경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언제나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고대 소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유명한 <서유기> 속 화염산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나는 화염산 불꽃 더위를 한번 제대로 느껴보겠다며 기대를 단단히 했다.
드디어 화염산이 가까워지자 가이드가 길가에 차를 세우며 사진 찍을 시간을 주겠다는 했다. 그런데 “시간을 많이 드려도 어차피 오래 못 계실 테니까 5분 드리겠습니다. 얼른 찍고 버스로 오세요”라고 하는 바람에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아무리 더운 곳이라 해도 그렇지, 관광지에서 사진 찍을 시간을 5분 주는 법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하며 투덜댔다. ‘이래서 패키지여행은 아쉬움이 남는 법’이라고 속상했다.
그랬는데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그만 숨이 턱 막히는 것이었다. 이건 더운 게 아니라, 뜨거운 게 아니라, 뭔가 묵중한 것이 가슴을 세차게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곧바로 얼굴이며 팔을 수많은 바늘이 콕콕 찔러대는 것처럼 아팠다. 가슴은 무엇에 얻어맞은 듯 숨쉬기 어려운데, 온몸은 수많은 고슴도치가 달려들어 찔러대는 것처럼 따갑고 아프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5분은 너무 길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댄 다음, 살기 위해 버스로 돌진하고 말았다.
투르판은 연간 강수량이 16mm 정도 되는데, 며칠 전에 5mm가 내렸다고 했다. 연간 강수량의 1/3이 한꺼번에 내린 셈이라서 홍수가 났고, 그래서 도로가 통제되었다는 말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고작 5mm 비에 무슨 도로 통제란 말인가.
하지만 도로변에 밀어놓은 진흙더미를 보니 이해가 되었다. 물이 스며들지 않는 찰진 진흙땅에 비가 내리자 진흙물이 도로로 쏟아졌고, 펄펄 끓는 아스팔트 도로에 쏟아진 진흙물은 벽돌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아마 진흙 반죽을 가마에 구워낸 것이나 진배없겠다.
화염산을 벗어나며, 나는 손오공 일행이 어떻게 그 길을 걸어서 서역까지 갔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단 5분도 못 견디겠는데, 어떻게 하루종일 그 길을 걸어갔단 말인지. 옛사람들이 그 산을 왜 화염산이라고 했는지,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선명히 이해되었다. 화염산 주변은 진짜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