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철회 비율 9.2%…5년 만에 최고
섣부르게 상품 가입했다가 취소 빈번
영업 경쟁 확산 속 소비자 불신 우려
국내 생명보험사 암보험 고객 10명 가운데 1명 가까이가 가입한 지 한 달도 안 돼 환불을 받아 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년 만에 제일 잦은 수준임과 동시에 생명보험사들이 판매하는 모든 상품들 중 가장 빈번한 사례로, 어떤 이유든 섣부르게 암보험에 가입했다가 이를 취소하거나 혹은 금세 불만을 느껴 계약을 깨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암보험과 같은 보장성 상품을 더 많이 팔아야 하는 생보업계의 영업 경쟁이 과열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자칫 소비자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2개 모든 생보사들이 판매한 암보험 신계약 중 청약철회가 발생한 비율은 평균 9.2%로 전년 대비 1.9%포인트(p) 높아지면서, 2018년(9.6%)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청약철회는 고객이 불필요한 보험에 가입했다고 판단했을 때 청약일로부터 30일 이내 혹은 보험 증권을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계약을 철회할 수 있는 소비자보호 제도다. 보험사는 청약철회 신청을 받은 날로부터 3일 이내에 보험료를 돌려줘야 하고 이를 넘기면 이자까지 지불해야 한다.
암보험의 이같은 청약철회 비율은 생보업계가 취급하는 상품들 가운데 제일 높은 수치다. 실제로 같은 해 생보사들이 판매한 각종 상품들의 청약철회 비율은 ▲종신보험 7.4% ▲변액보험 7.3% ▲연금보험 6.4% ▲저축보험 6.1% ▲치명적질병 보험 4.8% ▲어린이보험 4.0% ▲실손의료보험 2.0% ▲기타 5.9% 등으로, 모두 암보험을 밑돌았다.
생보사별로 보면 KB라이프생명의 암보험 청약철회 비율이 19.5%로 최고였다. 이어 ▲신한라이프생명(15.0%) ▲AIA생명(14.6%) ▲라이나생명(13.3%) ▲푸본현대생명(12.8%) 등의 해당 수치가 두 자릿수 대로 높은 편이었다. 이밖에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9.8%)과 BNP파리바카디프생명(9.3%) 등의 암보험 청약철회 비율이 생보업계 평균을 웃돌았다.
생보업계 입장에서 이런 현실이 더욱 뼈아픈 이유는 가뜩이나 암보험 판매의 수요가 더욱 커진 속사정 때문이다. 지난해 본격 시행된 IFRS17을 계기로 보장성 상품 강화가 공통의 숙제가 되고 있어서다.
IFRS17이 시행되면 보험사의 부채 평가 기준은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돼 보험금 적립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금리를 보장하는 저축성 상품은 생보사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현재 회계에서 판매 첫 해 생보사에게 손해를 발생시키는 보장성 보험은 IFRS17 시행 시 거꾸로 처음부터 이익을 안겨주는 효자 상품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잦은 청약철회가 과잉 영업의 전조 현상일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보험을 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를 깨는 경우가 빈번해졌다는 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품에 가입하는 케이스가 늘어난 영향으로 볼 수 있어서다. 설계사의 권유에 이끌려 계약을 맺었다가 이를 후회하는 케이스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청약철회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권리인 만큼, 꼭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특정 분야의 청약철회가 두드러지게 잦다면, 일단 팔고 보자는 식의 영업에 따른 부작용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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