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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국이 미국이나 호주처럼 연금 선진국이 되려면 퇴직연금의 중간 누수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고령화센터장은 5월 초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진행한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한국 퇴직연금의 핵심 문제로 적립금이 단기적 운영에 그치고 있는 점을 꼽았다.
퇴직연금은 말 그대로 은퇴 뒤 생활을 위한 자금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퇴직연금을 직장생활 중 주택 마련, 자녀의 교육과 결혼 비용 등으로 써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렇다 보니 20년, 30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꼬박꼬박 연봉의 8.3%를 적립해도 정작 노후에 빈 손이 되는 사례가 다반사다. 이름은 퇴직’연금’이지만 들여다보면 연금으로서 역할은 전혀 못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강 센터장이 통계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주로 30, 40대 시기에 주택구입과 임차 등 주거 관련 자금으로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하는 데 그 규모가 연간 약 2조 원에 이른다.
이직에 따라서도 연간 약 10조 원 규모의 퇴직연금이 새 나가고 있다.
정부는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 제도를 통해 직장을 옮겨도 퇴직연금 운용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직 뒤 IRP 계좌를 해지해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쓰는 비중이 95% 수준으로 매우 높다.
한국은 55세 이상이 돼 퇴직연금을 정상적으로 수령할 때도 대부분 일시금 지급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 센터장은 “퇴직연금을 중간에 빼 쓰게 되면 그 뒤 다시 적립한다해도 노후 자산이 될 정도의 규모로 모으기 쉽지 않다”며 “그러니 은퇴 때도 ‘이거 연금으로 받을 의미도 없겠다’ 싶어 또 다시 일시금으로 수령하게 되는 악순환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퇴직연금의 연금 수령자와 일시금 수령자의 평균 적립금은 각각 1억5500만 원과 2500만 원으로 6배가량 차이가 났다.
수령 방식 비중을 살펴보면 연금 수령자는 7.1%에 그쳤고 일시금 수령자가 92.9%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강 센터장은 국민연금으로는 노후 보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할 때 퇴직연금의 중도인출 없는 장기운용과 은퇴시 연금 수령 확대 방안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과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 퇴직소득세 등 세금체계부터 다양한 제도적 개선방안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강 센터장은 “미국과 영국, 스위스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연금소득을 종합소득에 포함해 세금을 매긴다”며 “그렇다보니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자금을 융통하려다가도 세금이 너무 높으니 55세까지 연금 형태로 가져가야겠다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를 보면 퇴직연금을 조기인출하거나 일시금으로 수령하면 중과세와 패널티를 부과한다.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면 누진종합소득세를 적용하고 조기인출에는 패널티 10%가 적용된다.
이에 미국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일시금 수령 비중이 20~30대는 10~13% 수준이고 60대 이상은 2~5%에 그친다. 대부분이 연금으로 퇴직금을 수령해 퇴직연금이 노후 자금으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한국은 2023년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약 385조 원에 이른다.
적립금 규모가 한 해 평균 40조 원 이상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잘 운용하면 노후자산으로 상당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바라본다.
강 센터장은 “한국의 현재 퇴직연금이 약 400조 원 규모인데 중도인출과 이직 때 해지로 빠져나가는 돈만 없었어도 적립금이 500조 원은 됐을 것이다”며 “퇴직연금 사업자가 장기적 관점에서 운용 전략을 가동하기 위해서도 퇴직연금의 중도인출과 일시금 수령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센터장은 1970년생으로 경북 영천 영동고등학교,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재정금융)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건사회 연구원, 국민연금 연구원, 보험연구원 사회안전망연구실 실장 등을 지내면서 공적연금, 사적연금을 아우르며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쳐온 ‘연금 전문가’다. 2022년부터 보험연구원 고령화센터장을 맡고 있다. 박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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