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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공사의 공기 연장으로 인한 건설사와 정부 산하기관·지방자치단체 간 공사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공공 공사의 주된 계약 방식인 ‘장기계속계약’의 제도적 빈틈으로 소송을 통해서만 간접 공사비 정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쟁 소지를 줄일 수 있는 국가 계약법 개정안은 임기 만료 폐기될 처지에 놓여 향후에라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신림~봉천터널 2공구 도로건설공사 시공을 맡은 GS건설 컨소시엄은 발주처인 서울시를 상대로 2020년 12월부터 공사대금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약 7년(2010년 10월~2017년 12월)이었던 공사 기간이 시의 예산 부족과 사업 계획 변경으로 인해 16년(~2026년 12월)으로 늘어났음에도 시가 장기계속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직접비 일부와 간접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소송 가액은 134억 원 6500만 원으로 향후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시 관계자는 “건설사의 청구 금액이 시의 판단보다 과다해 소송에서 적정 금액을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 공사에서 발주처와 시공사가 공사비를 놓고 소송을 벌이는 것은 흔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장기계속계약을 체결한 경우 분쟁 소지가 특히 큰 것으로 평가된다. 장기계속계약은 다년도 공공 공사의 계약 유형 중 하나로, 계약 자체는 총 공사 기간에 대해 체결하지만 예산은 매해 받아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계약 유형인 ‘계속비 계약’이 전체 예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과 달리 첫 해 예산만 확보해도 착공할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대부분의 공공 공사가 장기계속계약을 체결한다.
문제는 장기계속계약 체결 후 발주처의 과실로 공사 기간이 연장되더라도 공사 공백기 중 발생한 간접비는 건설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특정 해에 배정받은 예산이 8개월치 공사분에 불과한데 다음 해에도 공사가 이어져 현장을 유지해야 하면 나머지 4개월 동안 발생하는 간접비를 건설사가 부담하는 식이다. 국가계약법상 장기계속계약의 총 공사 기간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발주처가 공백기에 간접비를 지급해야 할 의무 또한 없기 때문이다. 간접비는 각종 보험료, 사무실 운영비, 수도광열비 등으로 총 공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7% 정도로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간접비 반영을 요청해도 발주처가 감사 부담에 지급을 꺼리다 보니 소송이 아니면 간접비를 받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시공사들은 최초 입찰공고에서 제시된 공사 기간으로 예상 원가를 편성하는데 장기계속공사에서 간접비를 못 받다 보니 원가율이 실제 받는 도급액을 초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꼬집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21년 보고서에서 57개 공공 공사를 분석해 공기 연장으로 인한 간접비 손실 비용이 공사당 78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한 바 있다. 경실련은 “원도급 업체가 (간접비) 손실비용을 청구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발주기관 우위의 수직적 구조 때문”이라며 발주처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장기계속계약의 간접비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계약법의 관련 조항이 명확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영준 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 실장은 “사실상 입법 공백으로 인해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셈”이라며 “장기계속계약의 총 계약 기간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 계약 기간이 늘어나면 금액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1대 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국가계약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이달 임기 만료 폐기가 유력한 상황이다. 비슷한 법안은 앞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돼 2019년 법안소위에서 정부와 업계가 협의해 대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졌지만 이후 5년 동안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던 셈이다. 전 실장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은 장기계속계약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간접비 지급 규정이 세분화돼 있다”며 “예산 부담에 법 개정이 어렵다면 공기 연장 시 간접비 산정 기준이라도 계약서에 명확하게 명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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