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깊어지면서 식물원은 왠지 모르게 어설픈 젊은이와 같은 초봄의 모습을 벗고 성숙한 어른 같은 여름으로 향해가는 듯하다. 튤립으로 대표되는 발랄하고 화려한 꽃들이 사라지고 작약과 같은 성숙미가 돋보이는 꽃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주변 나뭇잎 색도 어린이같이 밝은 연두색에서 제법 어른티가 나는 청년들같이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세상의 그 어떤 꽃에도 뒤지지 않을 것처럼, 영원히 건강함을 뽐낼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들 같았던 튤립꽃의 시간은 불과 보름 남짓 만에 끝나버렸다. 왠지 모르게 갈 길을 서두르는 것만 같다.
노란색 빨간색 형형색색의 꽃잎이 있던 자리에는 꽃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녹색의 씨방만이 뚜렷하게 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식물원에 자주 오던 어떤 멋진 젊은 부부가 어느 날 아이를 안고 나타났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둘만 오던 때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많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아이와 함께 오기 시작한 이후에는 아이만 눈에 들어오고 그 부부의 모습은 예쁜 아이의 모습에 가려져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꽃잎은 떨어지고 씨방만 남은 튤립보다는 좀 낫지만, 떨어져서 보이지 않든 가려져서 보이지 않든 큰 차이는 없다.
튤립은 왜 그렇게 짧고 강렬한 젊은 시간을 보내고 꽃잎을 떨굴까. 그 뒤에 남은 녹색의 씨방은 튤립이라는 식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튤립은 여러 해 살면서 알뿌리로도 번식하지만, 보통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씨앗을 만들고 이 씨앗이 커져 새로운 튤립으로 자라기도 한다.
튤립의 원산지는 과거 터키로 불렸던 튀르키예 동부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이다. 5월 말이면 벌써 대지가 온통 누렇게 변해버릴 정도로 건조한 환경이다. 또, 겨울이 몹시 춥고 일찍 찾아오는 지역이다. 이런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온 튤립은 긴 겨울 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알뿌리가,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고 기온도 적당히 따뜻한 짧은 봄 동안에 잎을 내고 꽃 피우고 열매와 씨를 키우는 1년살이를 마쳐야 한다. 그렇다 보니 일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늦은 나이에 아이 하나를 얻어 키우다 보니, 직장생활이 길게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요즘 더 허둥대는 내 모습 같기도 하다.
씨방은 더 자라고 성숙해지면 곧 열매가 된다. 그 안에는 다시 식물로 자랄 수 있는 씨앗을 키우고 있다. 꽃잎이 화려하게 피어있는 기간에 비해 씨방이 성숙해서 열매가 되고 그 안에 있는 밑씨가 씨앗이 되는 기간이 훨씬 길다. 결국 튤립은 화려한 꽃잎을 달고 있는 시간은 아주 짧게 보내고, 한 해 삶의 대부분 시간을 열매와 씨앗을 키우는 데 바치는 것이다. 마치 삶의 목표가 오로지 자식을 키우는 데 있었던 우리 어머님 같은 모습이다. 여기에는 비장함마저 서려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어머니를 인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어머니는 꽃잎을 떨군 튤립 같은 모습이었을 테니 젊고 화려한 모습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런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하게 지내는 어떤 식물 해설가 선생님이 이런 식물들의 모습을 좀 더 밝고 우아하게 긍정적으로 표현해서 감동했다. ‘열매는 꽃들의 희망’이라고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정말로 적절하면서도 긍정적 표현이어서 감동적이었다. 꽃잎이 씨방과 그 속에 밑씨를 보호하고 성숙시켜서 열매와 씨앗으로 잘 자라도록 처음 짧은 기간 역할을 다하고 시들어버린다는 측면에서, 꽃잎은 부모의 모습과 같고 열매와 씨앗은 아이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그 선생님은 아이를 의무적으로 키워야 하는 삶의 무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으로 생각하는 것이니 얼마나 다른 시각인가.
우리 어머님은 어땠을까. 나처럼 자식을 삶의 무게로 느끼셨을까 아니면 온몸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희망찬 미래로 보셨을까. 노쇠하셨지만 아직 정신이 맑으시니, 여쭤보고 싶지만 쑥스럽다. 그저, 그렇게 살아오셨던 어머님께 희망이 되어드리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대신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철이 들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철부지인지 알 수 없는 딸아이가 어버이날을 맞아 과자 한 조각만 한 카드에 100글자도 안 되는 감사 편지를 써서 건넸다. 그 작은 종이 한 조각에 온몸의 피곤이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인생의 짐이 아니라 삶의 희망이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머님도 그러지 않으셨을까. 5월을 맞아 오랜만에 찾아뵌 어머님의 얼굴이 과거 언제보다도 온화해진 것을 보았다. 힘들게 살고 있지만 나름대로 자기 삶을 꾸려가는 자식들이 모여앉은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 이루어졌다고 느끼셨기 때문이 아닐까 잠깐 생각해본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많은 학교 선생님들은 어떠셨을까. 그분들도 자식처럼 대해주셨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맡아 가르치셨던 것이 아니라 사회의 희망이 되고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려 노력하셨던 것 같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이 있는 5월 가정의 달에 식물원을 걸으면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생각해본다. <다음 글은 5월 30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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