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상장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는 세계 최하위권으로 후진적입니다. 당연히 주주로서 누려야 할 권리도 무시당하고 있죠. 우리 자본시장의 후진성을 개선해 주주가 부자가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2024년 주주총회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매년 숨죽이고 있던 소액주주들이 서로 연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와 달리 소액주주들이 손쉽게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 보유 여부를 인증하고 연대할 수 있는 소액주주연대 플랫폼 ‘액트’ 덕분이다. 평상시 투자한 종목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주주총회에서는 함께 주주제안을 하는 등 소액주주들만의 목소리를 낸다. 덕분에 일사천리로 의사봉을 내리치던 주총장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소액주주들의 목소리에 주요 주주들도 의사 진행을 멈추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게 됐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춰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소액주주연대 플랫폼 액트를 만든 이상목 컨두잇 대표는 국내 자본시장이 기업과 주주가 상호 성장하는 선순환적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고 단언했다. 결국 주주들의 의사는 무시되고 사측의 이익만 추구되는 불균형적인 기업 문화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유발됐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액트’의 설립 배경과 소액주주 운동에 뛰어든 계기에 대해 설명해달라.
“2022년 7월 12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DB하이텍 물적분할 사태가 벌어지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제 머릿속에 “내가 속해 있는 DB그룹이 이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단체 톡방을 만들었다. 그때 비로소 소액주주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결국 액트 설립 배경도 주주운동에 뛰어든 계기도 DB하이텍의 물적분할 사태라고 확언할 수 있다. 문제를 파악하고 나니 주주운동을 더 잘 전개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이에 대한 고민은 늘 하고 있다.”
-처음 단체 채팅방 만들었을 당시 일반 주주들은 없었나.
“저와 회사 동기들이 DB하이텍이 좋은 회사라고 칭찬을 많이 하니까 그 말을 믿고 투자한 주주분들도 많았다. 그러다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후에 하나 하나 파악하는 내용을 투명하게 공유하기 위해 단체 채팅방을 개설하게 됐다. 제가 만들었으니 자연스럽게 방장이 됐다. 그런데 만든 순간부터 하루에 200~300명 정도 되는 주주님들이 입장했다. 그만큼 화가 많이 나신 거다. 결과적으로 저희도 강력하게 반대했고 다른 주주분들의 반발도 심했지만 물적분할 안건 통과를 막지 못했다. 회사에서 졸속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설립 목표가 ‘주주가 부자가 되는 세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주가 부자가 아닌 세상이니까 부자가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오롯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원인은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대주주가 지분을 20%만 보유하고도 회사에 대한 의사결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형태가 바로 후진적 지배구조다. 80%의 지분을 가진 소액주주들을 무시하는 행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후진적 지배 구조를 뜯어고치려면 결국 주주들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저는 액트를 통해 현재 죽어 있는 의결권을 살리고 싶은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주주총회에 참석하면 된다. 주주들이 합심해 최대주주나 오너에 대한 견제 능력을 강화하면 후진적 지배구조를 주주 의사에 부합한 선순환적인 구조로 유도할 수 있다.”
-주주의 권리, 즉 주주권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말씀드렸다시피 회사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권리를 나눠 갖는 게 주식이다. 그런데 우리 주식시장에서는 의결권은 온데간데없고 모든 투자자들이 차익실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 주주들이 의결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반 주주들의 관심이 없다면 한국 특유의 후진적 지배구조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요약을 하면 주주권은 한마디로 ‘관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것도 주주권의 일종이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지배주주에 의한 침해 사례가 잦은가.
“미국이 ‘제로’라면 우리는 ‘100%’다. 미국에선 DB하이텍 같은 안건 꼼수 통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은 법제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교수님이나 산업 전문가분들한테 충분한 보수를 주고 회사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우리 자본시장을 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영국계 자산운용사 헤르메스에서 한국 자본시장에 대해 강한 비판 칼럼을 올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인도나 중국보다 더 후진적이라는 것이다. 한류 열풍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삼성전자가 버티고 있어 국내 시장을 들여다봤더니 전 세계에서 이렇게 낙후된 시스템을 갖고 있는 주식시장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주주총회 등을 통해 사측의 상식 밖 의사결정으로 투자 손실을 본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들은 다시는 한국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하는 데가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 망신이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는 상법 개정인가.
‘결국 우리 자본시장을 뿌리부터 뜯어 고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상법 개정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조세 제도 개선 작업 또한 병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상속을 할 때 주식을 기반으로 상속세를 책정한다. 이는 곧 주가를 누르면 세금을 덜 낸다는 얘기다. 세율 자체가 폭력적이다.
그러다보니 소위 말하는 자문사나 로펌에서 이런 대기업 고객을 위해 컨설팅을 해주고 고의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물적분할 같은 비상식적인 조언을 해준다. 다시는 일반 주주들이 관심도 갖지 않게끔 주식을 팔게 유도하는 것이다. 주가조작이라 할 수 있다. 상법도 상법이지만 자본시장과 연관된 모든 제도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고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와 방향성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주주행동주의를 바꿔 말하면 개인행동주의라고 생각을 한다. 대주주보다 많은 주식을 취득한 개인 투자자들이 회사에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하고 회사의 경영이 합리적으로 이뤄진다면 칭찬을 해주고 반대의 상황에서는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결국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게 진정한 주주행동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단, 주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게 현재 대한민국 상장사들의 자화상이다.”
-올해 주주총회에 대한 소회에 대해 설명 부탁 드린다.
“일단 가장 큰 성과는 소액주주 승리 사례가 생각보다 많이 나온 것이다. 특히, DB하이텍 같은 경우에는 오로지 소액주주들끼리 똘똘 뭉쳐 주총에 임했는데, 이 활동 하나만으로 국민연금과 국내 기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면서 회사가 시도했던 ‘이사수 8인 제한’ 같은 과도한 경영권 방어 안건을 부결시켰다.
사실 소액주주로서는 사측과 대결이 정말 힘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주주의 권익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개인 주주들도 모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든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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