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중앙대병원 교수 “환자 취업부터 결혼까지, 평생 지켜주고파” [아픔 나누기, 그리고 희망]
“희귀·난치질환이지만, 건강한 사람처럼 지낼 수 있습니다.”
김규원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IBD) 환자들을 향해 이렇게 격려했다. 크론병·궤양성 대장염 등 IBD는 완치할 수 없는 질환으로, 평생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첫 진단 시 환자들이 경험하는 좌절감과 두려움도 상당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식사와 스트레스 관리, 주기적인 진료 등 세심한 건강 습관을 들이면 발병 전만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본지는 최근 서울 동작구 중앙대병원에서 김 교수를 만나 IBD에 대할 잘못된 인식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진단·치료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김 교수는 소화기내과에서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 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대한장연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크론병 환자의 장간막 비후의 전사체 프로파일 및 세포구성 분석’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학술상을 받았다.
크론병·궤양성 대장염 증가세…젊은 층 빨간불
염증성 장질환은 사회 활동이 활발한 20~40대 사이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 사회 초년생 시기인 20대 중반 처음 진단을 받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2022년 기준 궤양성 대장염 및 크론병 환자 총 8만5934명 중 20~40대 환자가 4만8750명으로 56.7%에 달했다.
김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 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군대에서 복무하는 환자 등 청년들이 많다”라며 “초반에는 식중독이나 과민대장증후군, 장염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이런 급성 질환과 달리 증상이 만성적으로 평생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적 교류가 활발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경제활동을 바쁘게 하는 시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환자들의 심리적 충격이 크다”라고 덧했다.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주요 증상은 복통과 혈변이다. 위 운동은 감소하고 대장 운동은 항진되면서 변의를 느끼지만, 화장실에 여러 번 다녀와도 이를 효과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 환자들은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 사회생활에도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김 교수는 “환자들이 직장에서 6~7번씩 화장실을 드나들면서 동료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데, 아무리 친해도 직장 동료에게 자신의 병력과 증상을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는 환자들은 시험 중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불안감을 느끼고, 미리 시험 감독관에게 보여줄 진단 서류를 준비해 놓는다”라고 말했다.
완치는 없지만, 평범한 일상 유지 가능…핵심은 ‘꾸준함’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치료는 약물로 면역반응을 조절해 진행한다. 염증이 과하게 번지면 약을 투여해 면역반응을 진정시키는 원리다. 주로 5-아미노살리실레이트, 코르티코스테로이드, 면역조절제, 생물학적제제 등이 사용된다.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인정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보험 급여 혜택이 적용되며, 환자들은 치료 비용의 10%만 부담한다.
김 교수는 “효과성이 높은 약들이 국내에 다양하게 도입됐고, 보험급여 환경도 적절히 조성된 편이기 때문에 환자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이 많다. 치료에 중요한 요소는 환자가 자주 진료 받고, 약물에 대한 반응을 자세히 추적 관찰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꾸준한 진료와 관리는 필수다. 김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에게 항염증제 5-아미노살리실레이트가 자주 쓰이는데, 투약 후 초반에는 특별한 변화나 불편함이 없어 한 달 정도 약을 쓴 뒤로는 진료를 보러 오지 않는 환자가 종종 있다”라며 “부작용을 포착하거나, 주기적으로 약물에 대한 반응을 평가하려면 환자가 병원에 자주 와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결핵·대상포진·암까지 관련 질환 예방 주의해야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병원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면역반응 조절 약물을 활용하는 만큼, 치료 중 결핵과 대상포진 등이 불쑥 찾아오기 쉽다. 대한장연구학회에 따르면 염증성 장질환 환자의 결핵 위험도는 건강인보다 2.64배, 대상포진 위험도는 1.48배 높다. 따라서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각종 예방접종을 완료해야 한다.
김 교수는 “면역조절제나 생물학적제제 등의 약물은 환자의 면역반응을 저하하기 때문에 이를 투약하는 염증성 장질환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약물의 효과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잠복해 있던 결핵균과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활성화하게 된다”라며 “약물 투여를 시작하기 전에 해당 바이러스의 항체 형성 여부를 확인하고, 미리 백신을 접종하도록 권한다”고 강조했다.
염증이 암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도 필요하다. 소장과 대장 등에서 염증이 호전과 재발을 반복하면, 세포가 변형되면서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염증성 장질환은 젊은 연령대에 발병하고, 완치 없이 증상 악화와 호전을 반복한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암 발병 위험은 건강인보다 높다.
김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을 앓는 경우 당연히 암 발병 위험에 유의해야 한다”며 “염증이 반복되면서 정상 점막이 이형성으로 바뀌다가 결국 암이 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선종이나 선암의 형태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꾸준한 관찰 필수…“환자 취업부터 결혼까지, 평생 지켜주고파”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은 진료실 밖에서도 세심한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 식단과 스트레스가 장 건강에 주는 영향이 적지 않아서다.
김 교수는 “채소에 함유된 섬유질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알려졌지만, 염증성 장질환 환자에게 과도한 섬유질은 장내 미생물의 분해 작업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라며 “스트레스와 우울장애를 완화하면, 염증이 호전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젊은 환자들의 곁을 오랫동안 지키는 것이 김 교수의 바람이다. 특히 의사로서 결혼과 출산 등 생애주기의 중요한 순간을 건강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목표다.
김 교수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앞으로 질병이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하거나, 출산하면 아기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을지 두려워한다”라며 “연속성 있는 진료가 전제된다면,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도 진단 전과 다름없이 건강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했다. 그는 “젊을 때 진단을 받은 환자가 취업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증상을 조절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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