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과 관련해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 방안을 내놨다. 사업성 평가기준을 개선해 정상 사업장은 자금 공급을 강화하고,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은 재구조화,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방안이 골자다.
그동안 만기연장 등 ‘호흡기’를 물려 연장해 온 PF사업장의 ‘석(石)’ 가려내기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본PF로 넘어간 사업장은 정상화에 방점을 두되, 브릿지론(연계자금대출) 단계 사업장에는 본격적인 구조조정 신호를 준 것으로 파악된다.
PF대출 만기 연장, 금융지원 등으로 금융사들의 충당금 부담이 늘면서 외려 신규자금 투입이 어려워져서다. 실질적인 연착륙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건설업계는 더 큰 충격이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업장 옥석가리기는 필요하지만 건설경기 악화 등 시장환경 개선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책 없는 구조조정이 가뜩이나 침체한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옥석가리기…”석(石) 늘어날까 우려”
1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사업성 평가기준 개선 등 내용을 담은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본PF, 브릿지론 외에 토지담보대출, 채무보증 약정 등을 평가대상에 포함하고 대상금융 기관에 새마을금고도 포함한다. 본PF, 브릿지론별 평가 체계를 달리하고 평가등급 분류도 기존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보통 단계에 있던 사업장 일부가 유의 단계 등으로 하향될 가능성이 있다. ▷관련기사 : ‘PF 위기설’에 은행·보험 구원투수…최대 5조원 투입(5월13일), 토담대·새마을금고도 PF 평가…등급 4단계로 세분화(5월13일)
또 사업성 평가를 금융사 내부 위험관리 절차를 거쳐 예외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해 민간 금융기관 평가에 힘을 실어줬다. 부실사업장 정리에 속도가 날 수 있도록 재구조화, 정리에 필요한 자금, 인센티브도 지원한다. ▷ 관련기사 : 부동산PF ‘부실사업장’ 자금 지원해달라, 당근줄테니(5월13일)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부실이 이연, 누적하면서 사업장이 방치되고, 금융사의 건전성이 악화해 건설분야 신규 자금 공급이 안 되는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사업성을 평가해 옥석을 가리는 게 불확실성을 줄이고 자금중개 기능을 복원해 사업정상화와 건설 경기를 회복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전까지 만기연장 등으로 미뤄왔던 PF 사업장 구조조정에 사실상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직후 경제·금융 부처·기관장들과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열어 PF 연착륙 방안을 논의했다.
대형 vs 중견·중소건설사 입장 갈려
금융당국은 이번 대책과 관련해 건설사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지방, 브릿지론 사업장을 중심으로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사마다 상황이나 체력이 다르다 보니 정책에 대한 입장 차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당국이 건설사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지만 사업장마다 상황이 크게 갈린다”면서 “중소·중견사들이 가진 지방 PF 사업장의 경우 보증을 받아도 금융비용이 그대로다. 정책적 지원이 사실상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조조정의 방향성,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수가 동의하고 있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면서 “사업장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여력이 있는 대형사들은 부담이 적지만 지방 사업장을 다수 둔 중소·중견 건설사들은 생사가 달렸다”고 말했다.
토지담보대출, 새마을금고 등 평가 대상 등이 추가되면서 정리되는 사업장도 예상보다 많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대상 대부분은 지방사업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무리하게 구조조정이 추진될 경우 시장이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면서 “옥석가리기에서 ‘석(石, 구조조정)’이 예상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평가 대상 추가는 작은 사업장들까지 다 들여다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사업장이 대거 정리되면 규모가 작은 건설사들은 살아남을 여력이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대상이 실상 ‘브릿지론 단계’에 있는 사업장이다 보니 시행사나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 부담이 집중되고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사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지방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견·중소 건설사들의 경우 공격적인 수주를 위해 브릿지론 단계에서 시행사의 의무이행에 지급보증을 서는 경우가 다수”라며 “특히 지방의 경우 이런 경우가 더 많아 PF 구조조정시 중견 건설사들의 출혈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공매로 사업장이 다수 정리되면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데 중견·중소건설사 중 이를 버티기 어려운 곳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빠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꽤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이 경색돼 있고 신규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 보니 사업성 높은 곳도 진행을 못하는 곳들이 많다”면서 “정상화를 위해서는 빠른 구조조정을 통한 가격 재조정으로 시장이 신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되면 단기적으로 시장충격은 확실히 있을 것”이라면서도 “시장 정상화를 위해선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고 구조조정을 통해 오히려 시장 반등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정상화 ‘지원책’도 구체안 마련 요구
정부가 내놓은 PF 지원책이 시장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보완책을 마련해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방, 중소사들은 사실상 ‘감내 가능한’ 범위에서 제외돼 있다”면서 “세부적인 지원 내용들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소·중견 건설사들의 ‘운전자금’ 지원 방안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만기 연장 등 구조조정을 앞두고 금융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충당금을 쌓아야 하다 보니 사실상 신규 금융자금 조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건설사 유동성 공급 지원책으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rimary-CBO)’을 제시하고 있다. P-CBO는 공모시장에서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한 저신용 중소·중견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신용보증기금이 신용을 보강하고 발행업무를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약 1조원 규모 지원책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자금조달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1조원 규모를 지원하고 건설사들이 연간 3000만원 정도 비용부담을 줄여 자금조달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실상 창구에 가면 구체안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 활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원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체감온도는 바뀌지 않는 부분이 많다”면서 “이미 상반기가 지났는데 지원 관련 메시지만 나올 뿐 시행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점에서 제도의 실현 가능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칼’만 댈 게 아니라 수요 확대 등 건설경기 시장 회복방안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지방 미분양문제 해결을 위해 취득세, 양도세 등 세제 지원을 통해 수요를 진작한 부분들이 있었다”면서 “구조조정을 통한 연착륙도 중요하지만 시장환경을 개선해 연착륙할 수 있는 보완방안에도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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