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푸르다. 긴 겨울을 지난 후 푸르름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큰 선물이다. 봄을 알리듯 최근 우리에게 다가온 조경가 정영선(1941∼)의 전시회(‘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9월 22일)와 영화(‘땅에 쓰는 시’, 조경가 정영선을 다룬 다큐멘터리, 4월 17일 개봉)는 조경과 조경가의 역할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소중한 이벤트다. 이와 함께 최근 읽은 문화경관재단(TCLF, The Cultural Landscape Foundation, 미국)의 랜드슬라이드(Landslide; 위험에 처한 조경작품 등을 보도하는 섹션)의 보도는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오고 또 불러일으켰다.
미국 덴버(Denver)시는 1950∼80년대 대대적 도심 재개발로 도심을 대폭적으로 바꾼 도시다. ‘스카이라인 재개발 지구(skyline urban renewal area)’에는 재개발로 큰 건물과 그를 지원하기 위한 도로 정비, 공공주차장 그리고 공원이 만들어졌다. 스카이라인 파크(1973∼75년 조성)는 상업가로인 16번가 보행+대중교통 몰(transit mall)과 직교하는 선형(線形)공원(30m x 120m) 3개로서 각 블록 가장자리에 연속으로 조성되었다.
당시 세계적 조경가 로렌스 핼프린(Lawrence Halprin, 1916∼2009)은 성큰공원(sunken garden, 주변보다 1m 내외 낮게 조성)에 계단과 낮은 축대로 조성한 통로 및 외부공간 그리고 조형미 넘치는 큰 분수대와 기단 등 말 그대로 오피스사막지대에 오아시스를 설계하였다. 초기에 도심의 랜드마크로 등장했으나 20여 년 세월이 지나며 관리 소홀 등으로 점차 명성이 시들기 시작하고 1990년대 말에는 시민들의 민원 등을 이유로 시는 공원의 철거 및 재설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덴버시는 문제를 자세히 파악하고 설계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2002년 9월 시민공청회를 열었다. 연구교수로 덴버에 온 지 한 달 만에 나는 매우 흥미로운 이벤트를 만나게 되었다. 약 250여 명의 시민이 운집한 공청회는 크게 공원 철거 후 재조성을 주장하는 그룹(철거파)과 유지보수 및 보존을 요청하는 그룹(보존파)으로 나뉘었다. 철거파는 공원이 홈리스의 거점이 되었고 마약 거래도 의심돼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성큰으로 설계되어 공원 안팎에서 공원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볼 수 없는 것이 치명적 문제로 지적되었다. 공원에 연접한 레스토랑은 분수대가 너무 가까워 조형물에서 분출되는 물소리가 시끄러워 테라스에서의 영업에 지장이 크다고 호소하였다.
그에 대해 보존파는 공원이 당대 최고의 조경가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며 공원의 성큰가든이나 공간 구성 등 현대적 공원 설계의 실험정신을 담고 있으니 보존하며 잘 개보수하여 국가역사장소(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록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선단체 관계자는 홈리스들의 거점인 이곳이 식사와 동사(凍死) 방지를 위한 모포 등을 배분하는 데 잘 사용되고 있다며 홈리스를 쫓아내는 공원 철거나 재설계에 반대하며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자 모두에게 2분 발표를 허용하되 다른 사람의 시간을 양도받아 추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안내한 사회자의 재치가 돋보였다. 60여 명이 의견을 개진한 공청회는 2시간을 넘겨 진행됐는데 참가자들은 모두 진지했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근래에 그곳의 소식(2021년 진행 상황)을 관련 저널을 통해 접하고 나는 이 공원 철거사건이 아직도 살아 있는 이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개 블록의 공원은 전체적으로 평평한 공원으로 만들어져 어디서나 아주 잘 들여다보이는 소위 안전한 공원(또는 광장)으로 변하였다. 성큰과 함께 핼프린 설계의 중요 요소인 분수와 기단 부분은 한 곳은 철거되었고(레스토랑 민원이 있는 곳) 나머지 두 개는 각 블록에서 아직 철거되지 않고 조형물로 서 있다.
분수+성큰가든+기단 등은 작동하지 않으나 조형물로서 적당히 주변 공원의 가운데 서 있으며 그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보존 자격은 계속 논의되고 있다. 그 사이 핼프린은 2009년 사망하고 그 후 미국 내 그의 작품 몇 곳이 역사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경건축 분야와 역사보존 분야 전문가 및 시민 일부는 계속 덴버시 공원여가국에 스카이라인파크의 재조성에서 역사유산으로서의 가치에 비중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경가 정영선은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의 대표이며 전국의 많은 공공과 민간의 공원이나 정원을 설계하였다. 선유도공원, 아모레 퍼시픽 사옥 조경 등이 그의 작품 중 일부다. 모두 우리 시대의 선도적 실험적 작품들이다. 이미 우리는 소쇄원이나 보길도 윤선도 원림 등 선조들의 정원과 별서 등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그 장소와 문학과 사람을 기리는 지혜를 유지하여왔다. 이제 과제는 근현대 우리가 만든 정원이나 공원을 그 사회적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잘 밝혀내고 보존하여 후대들도 함께 문화적 감수성을 유지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이번 현대미술관 전시와 다큐 영화가 이런 움직임의 출발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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