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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보기] 역사유산이 되는 도시공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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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5월은 푸르다. 긴 겨울을 지난 후 푸르름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큰 선물이다. 봄을 알리듯 최근 우리에게 다가온 조경가 정영선(1941∼)의 전시회(‘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9월 22일)와 영화(‘땅에 쓰는 시’, 조경가 정영선을 다룬 다큐멘터리, 4월 17일 개봉)는 조경과 조경가의 역할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소중한 이벤트다. 이와 함께 최근 읽은 문화경관재단(TCLF, The Cultural Landscape Foundation, 미국)의 랜드슬라이드(Landslide; 위험에 처한 조경작품 등을 보도하는 섹션)의 보도는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오고 또 불러일으켰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회.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기호, 2024년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회.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기호, 2024년

미국 덴버(Denver)시는 1950∼80년대 대대적 도심 재개발로 도심을 대폭적으로 바꾼 도시다. ‘스카이라인 재개발 지구(skyline urban renewal area)’에는 재개발로 큰 건물과 그를 지원하기 위한 도로 정비, 공공주차장 그리고 공원이 만들어졌다. 스카이라인 파크(1973∼75년 조성)는 상업가로인 16번가 보행+대중교통 몰(transit mall)과 직교하는 선형(線形)공원(30m x 120m) 3개로서 각 블록 가장자리에 연속으로 조성되었다.

스카이라인 파크, 선형 공원. 사진; 김기호, 2003년
스카이라인 파크, 선형 공원. 사진; 김기호, 2003년

당시 세계적 조경가 로렌스 핼프린(Lawrence Halprin, 1916∼2009)은 성큰공원(sunken garden, 주변보다 1m 내외 낮게 조성)에 계단과 낮은 축대로 조성한 통로 및 외부공간 그리고 조형미 넘치는 큰 분수대와 기단 등 말 그대로 오피스사막지대에 오아시스를 설계하였다. 초기에 도심의 랜드마크로 등장했으나 20여 년 세월이 지나며 관리 소홀 등으로 점차 명성이 시들기 시작하고 1990년대 말에는 시민들의 민원 등을 이유로 시는 공원의 철거 및 재설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스카이라인 파크 내부. 성큰정원으로 축대들이 공간을 구획하고 동선을 유도하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02년
스카이라인 파크 내부. 성큰정원으로 축대들이 공간을 구획하고 동선을 유도하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02년

덴버시는 문제를 자세히 파악하고 설계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2002년 9월 시민공청회를 열었다. 연구교수로 덴버에 온 지 한 달 만에 나는 매우 흥미로운 이벤트를 만나게 되었다. 약 250여 명의 시민이 운집한 공청회는 크게 공원 철거 후 재조성을 주장하는 그룹(철거파)과 유지보수 및 보존을 요청하는 그룹(보존파)으로 나뉘었다. 철거파는 공원이 홈리스의 거점이 되었고 마약 거래도 의심돼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성큰으로 설계되어 공원 안팎에서 공원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볼 수 없는 것이 치명적 문제로 지적되었다. 공원에 연접한 레스토랑은 분수대가 너무 가까워 조형물에서 분출되는 물소리가 시끄러워 테라스에서의 영업에 지장이 크다고 호소하였다.

건물에 가까운 거대한 분수대와 성큰공원. 사진; 김기호, 2002년
건물에 가까운 거대한 분수대와 성큰공원. 사진; 김기호, 2002년

그에 대해 보존파는 공원이 당대 최고의 조경가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며 공원의 성큰가든이나 공간 구성 등 현대적 공원 설계의 실험정신을 담고 있으니 보존하며 잘 개보수하여 국가역사장소(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록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선단체 관계자는 홈리스들의 거점인 이곳이 식사와 동사(凍死) 방지를 위한 모포 등을 배분하는 데 잘 사용되고 있다며 홈리스를 쫓아내는 공원 철거나 재설계에 반대하며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자 모두에게 2분 발표를 허용하되 다른 사람의 시간을 양도받아 추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안내한 사회자의 재치가 돋보였다. 60여 명이 의견을 개진한 공청회는 2시간을 넘겨 진행됐는데 참가자들은 모두 진지했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철거되는 선형공원 중 한 블록, 분수대도 철거되기 직전이다. 사진; 김기호, 2003년
철거되는 선형공원 중 한 블록, 분수대도 철거되기 직전이다. 사진; 김기호, 2003년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근래에 그곳의 소식(2021년 진행 상황)을 관련 저널을 통해 접하고 나는 이 공원 철거사건이 아직도 살아 있는 이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개 블록의 공원은 전체적으로 평평한 공원으로 만들어져 어디서나 아주 잘 들여다보이는 소위 안전한 공원(또는 광장)으로 변하였다. 성큰과 함께 핼프린 설계의 중요 요소인 분수와 기단 부분은 한 곳은 철거되었고(레스토랑 민원이 있는 곳) 나머지 두 개는 각 블록에서 아직 철거되지 않고 조형물로 서 있다.

평평한 일반적 공원으로 재조성됨을 알리는 현수막. 사진; 김기호, 2004년
평평한 일반적 공원으로 재조성됨을 알리는 현수막. 사진; 김기호, 2004년

분수+성큰가든+기단 등은 작동하지 않으나 조형물로서 적당히 주변 공원의 가운데 서 있으며 그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보존 자격은 계속 논의되고 있다. 그 사이 핼프린은 2009년 사망하고 그 후 미국 내 그의 작품 몇 곳이 역사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경건축 분야와 역사보존 분야 전문가 및 시민 일부는 계속 덴버시 공원여가국에 스카이라인파크의 재조성에서 역사유산으로서의 가치에 비중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담양 소쇄원, 조선 중기 대표적 정원, 국가유산 중 자연유산(명승)이다. 자료; 문화재청(국가유산청, 5.17.이후) 국가유산 포털.
담양 소쇄원, 조선 중기 대표적 정원, 국가유산 중 자연유산(명승)이다. 자료; 문화재청(국가유산청, 5.17.이후) 국가유산 포털.

조경가 정영선은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의 대표이며 전국의 많은 공공과 민간의 공원이나 정원을 설계하였다. 선유도공원, 아모레 퍼시픽 사옥 조경 등이 그의 작품 중 일부다. 모두 우리 시대의 선도적 실험적 작품들이다. 이미 우리는 소쇄원이나 보길도 윤선도 원림 등 선조들의 정원과 별서 등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그 장소와 문학과 사람을 기리는 지혜를 유지하여왔다. 이제 과제는 근현대 우리가 만든 정원이나 공원을 그 사회적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잘 밝혀내고 보존하여 후대들도 함께 문화적 감수성을 유지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이번 현대미술관 전시와 다큐 영화가 이런 움직임의 출발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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