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주의여신만 6조2000억여원
리스크 정리 총력전 벌이지만
고금리 장기화에 악순환 계속
국내 4대 은행이 내준 대출에서 부실 직전 단계에 놓여 있는 액수가 6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부실의 늪에 빠진 대출도 3조6000억원이 넘을 정도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숨은 위험이 수면 아래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이 리스크가 쌓이지 않도록 이를 정리하는 작업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고금리의 터널 속 빚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밑 빠진 독과 같은 악순환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개 은행이 보유한 요주의여신은 총 6조2544억원으로 집계됐다.
요주의여신은 일반적으로 금융사가 내준 대출에서 연체가 1개월을 넘었지만, 아직 3개월에는 도달하지 않은 여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금융사들은 대출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정상 상태에서 벗어난 여신이다.
금융사에서 요주의여신으로 분류된 대출은 부실채권으로 넘어가기 바로 전 단계에 위치한 여신이다. 통상 연체가 3개월을 넘긴 여신은 고정으로 떨어지게 되고, 금융권에서는 요주의 아래 항목인 고정과 함께 회수의문·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이라 부른다. 이같은 고정이하여신은 금융권에서 부실채권을 분류하는 잣대로 쓰인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의 요주의여신이 1조954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1조4550억원과 1조4484억원으로 해당 규모가 큰 편이었다. 신한은행의 요주의여신은 1조3962억원을 기록했다.
이들 은행에서 요주의를 넘어 부실채권으로 돌아서는 대출은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조사 대상 기간 동안 4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 총액은 3조6119억원으로 22.1% 증가했다.
은행권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부실이 과도하게 누적돼 리스크가 가중되지 않도록 정리 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4대 은행이 상각하거나 매각한 부실채권은 총 1조20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0.5%나 늘었다.
은행은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된 부실채권을 상각이나 매각을 통해 처리하게 된다. 상각은 은행이 손해를 감주하고 갖고 있던 부실채권을 아예 장부에서 지워버렸다는 의미다. 부실채권 매각은 채권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이를 넘긴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실 대출이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역대급으로 높은 수준의 금리 기조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면서, 빚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는 차주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인하가 내년에나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요주의여신이 끝내 부실화하는 사례가 상당할 것”이라며 “은행 등 금융사들로서는 위험 관리 비용이 계속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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