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보험사 5조 자금 투입
여전업권 2000억 펀드 조성
캐피탈·저축은행 ‘표정관리’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뒷수습에 금융사의 동참을 강조하고 나섰다. 부실 사업장에 새로운 자금을 공급해주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건데, 정작 당사자인 금융사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과 박상원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PF의 질서 있는 연착륙 방안 브리핑을 열었다. 권 사무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은행과 보험사는 올해 1조원의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을 조성해 부실 사업장에 신규자금을 공급하고, 당국은 이 규모를 단계적으로 5조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부동산PF 이슈는 건설업계와 금융사가 최대 이해관계자라 원칙적으로 책임 있게 해결하는 것이 맞다”며 “지난해 은행은 10조 넘게 벌었고, 보험사도 6조 수익을 기록한바, 부동산PF 부담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부실 매물을 강제 인수하는 방식은 전혀 아니”라면서도 “내부 이사회를 거쳐 합리적으로 매물을 사도 될지 판단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금융당국은 자율적 참여라 밝혔지만, 사실상 지난해 은행과 보험사는 막대한 이익을 낸 만큼 부동산PF 해결에 동참하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은행권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부동산PF 정책에 은행권도 동참을 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면서도 “이번 정책에 동참하는 은행은 리스크도 같이 떠안는 것이기 때문에 인센티브가 명확하게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상생금융처럼 단순히 지난해 역대급 이익을 기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동산PF 공동대출에 참여하라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은행과 같이 공동대출 조성에 동참하게 된 보험사들도 씁쓸한 표정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보험사 수익 증가는 단순히 새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면서 벌어진 착시효과”라며 “회계상 이익이 났다는 이유로 부동산PF 뒷수습에 동참하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도 “보험사들은 지난해 10월에 조성된 캠코 펀드에도 참여를 한 바 있다”며 “캠코 펀드가 사용이 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최대 5조원까지 내놓으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당국 정책에 의문을 표했다.
반면 이번 정책의 수혜자로 꼽히는 캐피탈사와 저축은행에서는 사뭇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앞서 카드사와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업권은 지난해 10월 1600억원 규모의 여전업권 PF 정상화 지원 1호 펀드를 조성해 PF시장 재구조화를 통한 사업장 정상화를 지원해왔다. 1호 펀드 출자금인 1600억원이 거의 소진됨에 따라 2000억 규모의 후속 펀드 조성을 추진한다고 전날 밝힌 바 있다.
캐피탈업계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낮은 캐피탈사의 경우 브릿지론의 비수도권 비중이 높고, 중후순위 비중도 높아 자기자본 대비 브릿지론 부담이 크다”라며 “2000억원 펀드가 조성되긴 했지만, 캐피탈사가 쌓아야 할 부동산 PF 대손 충당금 추가 적립 필요약은 최소 9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이번 금융당국의 부동산PF 정책은 사업성은 있으나 유동성이 부족한 사업장에 자금 지원이 가능한 점을 비춰볼 때 PF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고 호평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도 “당국에서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 중 여러 개의 인센티브를 통해 경·공매 유도하는 것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정부에서 주장하는 경·공매 활성화 정책·인센티브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라며 “사업장을 가진 입장에선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경우 이익을 낼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바라는 수준의 헐값으로 매물을 처리할만한 인센티브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의 부동산PF 정책은 순서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저축은행에서 먼저 대손충당금을 쌓고, 못 쌓는 상황이면 사업장을 우선 청산해야한다”라며 “청산이 되고 난 뒤 은행과 보험사가 조성한 공동대출을 투입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이어 “현 상황에서 금융사가 사업장을 산 후 해당 사업장이 부실이 터지면, 은행과 보험사의 피해는 말도 안되게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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