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노조 측 요구, 기업 부담 증가 등과 별개로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한국 사회 노동력 축소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는 정부·국회·산업계가 모두 동의한다. 이에 국책연구기관은 일부만 혜택을 보는 정년 연장 대신 기업이 다양한 형태로 재고용을 의무화하는 법·제도 정비를 추진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12일 국무조정실 산하 한국노동연구원 이승호 연구위원 등이 발간한 ‘고령 불안정 노동 실태와 정책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내년부터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만큼 노동력 부족과 잠재성장률 저하를 막기 위해 60세 이상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에 보고서는 65세 정년 연장 법제화보다 △기업이 직접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방안과 △61세부터 노동자와 재계약하는 방안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강제성을 위해 둘 중 하나를 도입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한국보다 약 18년 일찍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계속고용제도’를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정년 연장은 혜택을 보는 이들이 정년제를 운용하는 사업체에 종사하는 정규직이나 임금근로자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비정규직·특수고용형태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처럼 소득이 낮고 빈곤 위험이 큰 집단에는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년이 임박한 58~59세 노동자 중 33.7%만 정규직이었고 나머지 66.3%는 정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비정규직이거나 특수고용노동자(미취업 포함)였다. 이러한 이유로 양대 노조인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달리 정년 연장 법제화를 22대 국회에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보고서는 한국이 법정정년은 60세를 유지하면서 기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65~70세까지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는 일본 사례를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22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기업 23만5875개 가운데 △정년을 폐지한 기업은 3.9% △정년을 연장한 기업은 25.5% △재계약을 포함한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한 곳은 70.6%에 달했다.
일본 계속고용제도의 핵심은 법정정년은 손대지 않고 재고용에 따른 기업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데 있다. 일본은 1994년 법정 정년을 60세로 정한 후 2006년 65세 고용확보조치 의무화를 꾀했다. 기업이 정년 폐지, 정년 연장, 재고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조치다.
이는 기업이 근속 기간 대신 직원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재계약을 맺도록 함으로써 임금 부담을 줄이면서 61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 노동시장 참여를 늘리는 효과를 거뒀다. 실제로 일본의 60~64세 고령자 취업률은 2000년 51%에서 2020년 71%로 급증했다.
계속고용제도 정책에 대해 자신감을 얻은 일본 정부는 2021년 직원이 원하면 위탁업무(프리랜서)나 사회공헌사업(자원봉사)에 계속 종사할 수 있도록 기업이 70세까지 취업확보조치를 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근로자가 원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는 지난 8일 60세 정년퇴직 근로자가 원하면 직종과 관계 없이 70세까지 재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며 정부 정책에 호응하기로 했다.
반면 근속연수(연차)에 따른 임금 증가 등 일본과 비슷한 고용 제도를 채택한 한국이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면 기업들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두고 노사 간 법적 분쟁도 한층 늘어날 전망이다.
보고서는 “일본 사례를 참고해 한국 기업이 자체적으로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 가운데 계속고용정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22대 국회가) 법제화를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여당도 “현재 한국 노동시장에서 청년 고용 등을 고려할 때 즉각적인 정년 연장보다는 노사 협의를 통한 정년 연장, 재고용 등 자율적 계속고용제를 활성화하도록 지원하는 게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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