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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되지도 않는 과일의 물가 상승 기여도가 절반이 넘는다.”(농림축산식품부)
“과일지수 변동을 최소화한 통계로 사실에 맞지 않는 설명이다.”(통계청)
지난주 관가에선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물가를 관리하는 농식품부와 물가지표를 매달 발표하는 통계청 간 때 아닌 ‘제철과일’ 논쟁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농식품부는 제철이 아니라서 시중에 유통도 되지 않는 과일이 물가 상승의 주범이 될 수 있냐는 논리입니다. 반대로 통계청은 유통이 되지 않더라도 품목별 가중치를 둬 전체 물가지표에 가격 변동률을 적용하고 있어 특정 과일을 빼버리면 오히려 통계오류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양쪽 논리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먹지도 않는 과일이 물가를 끌어올린다니 농식품부는 억울할 만 하고, 통계청 입장인 먹지 않는다고 가중치를 적용한 특정 과일을 때마다 제외하면 1년 전체 물가 흐름이 말 그대로 울퉁불퉁해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양쪽 논리가 틀린 게 없는데 간과한 게 있습니다. 제철이 오면 해당 과일 값이 떨어지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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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양쪽의 논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겠습니다. 앞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는 1년 전에 비해 2.9% 올랐습니다. 3개월 만에 3% 아래로 내려왔지만, 사과(80.8%)와 배(102.9%)를 중심으로 신선과실류 가격이 38.7% 뛰면서 물가 상승폭을 줄이지는 못했습니다. 신선과실류 가격은 전체 농산물 물가 상승률의 배 수준에 가깝습니다. 1년 전보다 80.8% 가격이 오른 사과와 102.9% 상승한 배 뿐만 아니라 감(56.0%)과 귤(64.7%)이 수개월째 두 자릿수대 상승률을 이어가는 점도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할당관세 적용으로 지난달 망고와 바나나 가격이 각각 24.6%, 9.2% 급락했지만 과일 물가를 끌어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 7일 농식품부는 보도 참고자료를 내고 “농식품 소관 먹거리 물가의 기여도는 1.33%포인트로 전월보다 0.11%포인트 낮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2.9% 상승률 중 1.33%포인트 정도만 농식품 먹거리가 끌어올렸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농식품부는 과일 중 계절품목으로 현재 유통되지 않는 품목들을 제외하면 실제 과일의 물가 기여도는 0.24%포인트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과일 중 귤(0.14%포인트), 복숭아(0.06%포인트), 수박(0.04%포인트), 포도(0.03%포인트), 감(0.02%포인트), 체리(0.01%포인트)는 계절품목으로, 이들 기여도를 합하면 0.3%포인트 가량이 됩니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사과와 배 등 품목이 물가를 끌어올렸는데, 지난달 기준 유통이 거의 되지 않는 과일 가격이 통계에 잡힌 탓에 과일이 전체 물가에서 과하게 대표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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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통계청은 제철이 아니라고 해당 과일을 빼버리면 물가 통계가 나올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통계청은 상위 품목 지수의 변동률로 지수를 만들어 전체 과일 지수 변동에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물가통계를 만들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즉 농식품부에서 말한 방식대로 제철이 아닌 과일을 제외하면 가중치를 둔 통계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겁니다. 가중치는 상대적인 중요도입니다. 전체 총합을 1000으로 두고, 전체 물가에 얼마나 영향을 주느냐를 설정합니다. 가중치의 기준은 가계동향조사에서 실시하는 가구의 소비지출구조에서 산출합니다.
2020년 기준 소비자물가 대표품목은 458개입니다. 이 가운데 각 품목은 상대적인 중요도에 따라 전체 물가지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농식품부 주장대로 제철 과일이 아닐 경우 통계청은 보합 기간의 품목으로 지정합니다. 보합 기간이란 계절성 때문에 가격을 직접 조사할 수 없는 시기에 다른 비슷한 품목의 물가 상승률을 대입해 물가 상승률을 추론하는 기간을 지칭합니다. 보합 기간이 있는 품목은 농수산물 11개 품목과 공업제품 6개 등 총 17개입니다. 과일로 보면 복숭아(10~6월), 수박(9~4월), 참외(9~2월), 딸기(6~11월), 감·귤(4~9월), 오렌지(7~12월), 체리(3~5월, 9~11월) 등으로 제철이 아닐 경우엔 상위 분류지수의 가격 변동을 가져와서 적용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해당 품목의 상위 또는 유사한 품목의 가격변동률을 적용해 대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통계청도 계절 농산물이 제철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가격 차이를 고려해 물가산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청은 여름에 귤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7~8월 통계에서 귤의 가중치를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가중치는 2, 3년마다 전체적으로 조정하는데, 제철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정하면 전체 품목 가중치가 흐트러져 되레 통계를 왜곡시킨다는 설명입니다. 유통되지 않는 과일이 물가 0.3%포인트를 밀어올렸다는 농식품부의 주장에도 “전체 과일이 전달에 비해 얼마 올랐는지 평균치를 계산하기 때문에 유통되지 않는 과일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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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농식품부와 통계청 의견의 절충으로 보합기간 과일의 가중치를 더 낮추는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입장 마다 일리가 있고 필요한 지적도 맞습니다.
문제는 제철 과일이 항상 저렴한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수확 철에 가장 많은 물량이 쏟아져 나와 과일 값이 내려가는 게 상식적이지만 제철이라는 이유로 소비량이 함께 증가할 경우 공급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상기후까지 겹쳐 출하량 감소가 나타날 경우 가격 상승 속도는 더 가팔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과일이 물가충격의 최대 요인이 됐던 것은 지난해 9월 제철 과일인 사과값이 폭등하면서였습니다.
하우스 작물의 경우 제철 과일이라는 개념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딸기의 제철은 4월 이후지만 떠올려 보면 가장 많이 딸기를 접할 수 있는 시기는 크리스마스 전후입니다. 하우스 재배가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1년 내내 딸기를 수확할 수 있는 시기가 됐습니다. 한 철 먹을 때가 맞네 아니네라는 논쟁이 허무한 이유입니다. 그나마 유통되지 않을 때는 소비자도 찾지 않으니 물가 충격이 적은 것은 아닌지 숙고할 일입니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제철에 작황까지 좋지 않고 이상기후가 겹치면 제철을 따지기 전에 1년 내내 비싸서 사먹지 못할 수 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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