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180조는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매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은 기본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있는 상장증권을 매도하는 ‘무차입공매도(흔히 말하는 불법공매도)’를 금지하고, 차입한 상장증권으로 결제하고자 하는 매도 즉 ‘차입공매도’는 허용하고 있죠.
금융당국이 공매도 문제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건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부터입니다. 당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증시불안이 이어졌고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매도가 늘어났습니다. 금융감독원은 그해 7월부터 9월까지 공매도 관련 검사를 실시했고 금융위원회는 그해 10월 공매도를 전면금지했습니다.
또한 금융위는 공매도 주문을 수탁받는 국내 증권사가 반드시 결제 가능 여부, 즉 차입한 공매도가 있는지를 확인하도록 제도를 강화했습니다. 유독 공매도가 많은 종목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공매도를 금지하는 냉각기간도 도입했습니다.
이후 공매도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으면서 2011년 8월, 2020년 3월 그리고 지난해 11월까지 총 세 번에 걸쳐 추가적인 전면금지 조치가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법공매도에 과징금을 부과(2021년 4월)하는 제도개선도 이루어졌죠. 그럼에도 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제도에 대한 불만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지난 3일 글로벌IB의 불법공매도를 또 적발했다며 성과를 강조하고 나섰는데요. 2112억원 불법공매도, 고의성보단 실수 강조
함용일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파트 부원장은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2112억원에 달하는 9개 글로벌IB의 불법공매도 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금감원이 조사과정에서 노력해 온 성과를 강조하는 시간이기도 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함용일 부원장은 “불법공매도 행위를 적발한 9개 글로벌IB는 미공개정보라든가 불공정거래랑 직접 연결된 불법공매도라기보단 차입주식 부족, 잔고관리시스템 등 시스템적 설계가 잘못되는 등 잔고부족에 의한 무차입공매도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글로벌IB들이 고의적으로 불법을 저질렀고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와 연계해 무차입공매도를 했다기보단 시스템적 결함, 단순실수 등에 의해 무차입공매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함 부원장은 “다만 잔고관리 부족 등이라 하더라도 어느 시점에 무차입공매도를 인지했거나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계속 무차입공매도 주문이 나갔다면 고의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현재까지 금감원 조사결과 글로벌IB들이 문제를 인지하고 고의 또는 의도적으로 불법공매도를 저질렀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한 9개 글로벌IB의 불법공매도 규모의 편차가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함 부원장은 “이번 불법공매도는 회사별 편차가 큰 만큼 일률적으로 다 똑같이 고의성이 있었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불법공매도에도 여러 가지 유형들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모두 고의성이 있었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금감원 조사 결과 특정 글로벌IB를 중심으로 불법공매도가 많이 이루어졌고 많으면 불법공매도 규모가 1000억원에 육박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 중 일부 글로벌IB의 불법공매도는 몇억 수준에 그치는 것도 있습니다. 금감원 설명처럼 몇억 수준에 불과한 글로벌IB는 정말 전산시스템 문제 등 단순 실수로 무차입공매도 주문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금감원은 무차입공매도로 인해 수익실현보다는 오히려 손실을 본 사례도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에 적발한 무차입공매도의 부당이득 규모는 크지 않다”며 “오히려 (무차입공매도로)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몇억이든 몇천억이든 무차입공매도는 불법
이처럼 금감원이 대대적인 불법공매도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음에도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반응은 영 미적지근합니다. 특히 금감원이 고의성보단 단순 실수로 인해 나온 불법공매도라는 것을 강조했다는 부분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많은데요.
그도 그럴 것이 단순 실수든 고의성이 있든 규모가 몇천억이든 몇억 수준이든 무차입공매도로 설령 이득이 아닌 손실을 봤든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공매도 주문을 넣는 것은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시장법이 무차입공매도를 금지하는 건 주식의 차입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다량의 주식으로 공매도를 남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식을 빌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을 악용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가 늘어날 수도 있죠. 금융당국 역시 무차입공매도를 허용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단 실이 더 많으므로 이를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차입공매도에 대한 법적 제재가 엄격해진 것 역시 불법공매도의 문제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그동안 무차입공매도를 한 투자자에겐 과태료만 부과해왔습니다. 그러다 지난 2021년 4월 무차입공매도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문제가 있을 땐 형사처벌도 할 수 있도록 법적 수위를 높였습니다. 당시 제도를 손보면서 금융당국은 고의적인 불법공매도 시도를 사전에 억제하고 착오나 실수 등으로 인한 무차입공매도 위반 행위 등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다만 불법공매도가 여전히 만연한 현실을 봤을 때 엄격해진 자본시장법이 외국인 등 공매도 투자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고 보긴 어려워 보입니다.
법적 제재수위를 더 높였음에도 오히려 무차입공매도 위반금액은 더 늘어났습니다. 금융당국이 과거에 적발한 무차입공매도 사례를 보면 간단합니다.
지난 2021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해외 소재 금융회사 10곳의 무차입공매도에 대해 6억8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었는데요. 당시 10곳 해외 금융회사의 무차입공매도 위반금액은 총 55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9개 해외 금융회사들이 무려 2112억원에 달하는 불법공매도를 저질렀습니다.
물론 기간의 차이는 다소 있습니다. 2021년 제재조치한 무차입공매도는 2018년 1월부터 2019년 7월 사이(약 1년 6개월) 일어난 일입니다. 이번에 적발한 불법공매도는 2021년 5월 공매도를 재개한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로 약 2년입니다.
조사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불법공매도 규모를 보면 공매도 재개 이후 엄청나게 많은 무차입공매도가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금융당국이 자랑하는 공매도 제도개선의 효과는 없었다고 봐야겠죠. 과거에도 단순실수 해명…고의성 정말 없을까
무려 2112억 원에 달하는 불법공매도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금감원은 단순 실수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단순 실수로 2000억원이 넘는 불법공매도가 만연해 있었다는 것은 금융당국이 불법공매도 문제에 대해 안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 무차입공매도의 원인이 단순 실수였다는 것은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되어 온 일이기도 합니다.
2018년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이 156개 종목에 대해 무차입공매도를 했을 때도 수동으로 차입수량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나 불법공매도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금융위는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의 무차입공매도는 단순 실수 및 오인으로 인한 것이며 시세조종 또는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와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2020년 외국계 자산운용사 및 연기금 등 4개사의 무차입공매도 역시 주식보유 여부를 착오해 불법공매도가 발생했습니다. 2021년 10개 해외 금융회사의 무차입공매도 역시 단순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것이었는데요. 이때 일부 해외 금융회사가 의도를 가지고 무차입공매도를 한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습니다만, 대체로 국내에서 일어난 무차입공매도는 고의성보단 단순 실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실제 무차입공매도를 행한 글로벌IB들의 항변을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금융위는 BNP파리바와 HSBC의 무차입공매도에 대해 265억원의 사상 최대 과징금 부과했었죠. 참고로 이 금액은 지난 3일 금감원이 발표한 불법공매도 규모 2112억원에 포함되어있습니다.
당시 두 글로벌IB 관계자들은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 출석해 무차입공매도가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두 글로벌IB 관계자들은 “고의는 없었고 부서 간 용어 혼란으로 인한 실수, 소통오류, 무차입공매도의 경제적 유인이 없음, 한국의 공매도 규정이 어려워서 등”의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단순실수라도 무차입공매도는 불법입니다. 지난 2020년 외국계 자산운용사 및 연기금 4곳의 무차입공매도를 적발하면서 증선위는 “착오로 인한 경우라도 금융회사의 공매도 제한 위반행위는 기본적인 주의의무 해태로 보아 엄정하게 조치해 왔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금융당국이 고의성 여부를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하면 이번에 새롭게 적발한 글로벌IB들 역시 실수와 착오 등을 이유로 적당한 제재 조치만 받고 마무리할 공산이 큽니다. 불법공매도를 적발했음에도 개인투자자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이유입니다.만연한 불법공매도…키운 건 ‘금융당국’
아울러 금융당국은 불법공매도를 적발한 사실만 내세우기만 할 것이 아닌 큰 규모의 불법공매도를 왜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해 보입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공매도 제도를 손봤음에도 불법공매도 건수와 규모는 나날이 늘었고 단순 실수, 시스템 오류 등의 이유도 매번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특히 이번에 적발한 불법공매도 2112억원은 지난 2021년 5월 시스템을 손질하고 공매도를 재개한 이후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무차입공매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공매도 재개 이후 1년이 지난 2022년 6월 공매도 전담조직을 설치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말 BNP파리바 및 HSBC의 대규모 불법공매도를 확인한 이후에야 공매도특별조사단을 출범시켜 글로벌IB의 공매도 내역을 전수조사했습니다.
여러번 실수, 착오 등으로 무차입공매도가 일어났지만 이를 방치해왔고 결국 2112억원이라는 대규모의 불법공매도가 나왔습니다. 이는 금융당국이 자랑할 만한 조사결과라기 보단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물로 보입니다.
해외 투자자들이 무차입공매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처럼 금융당국도 불법공매도가 나오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엄격히 해야 함에도 불법공매도 규모는 더 커진 것이죠.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면서까지 제도를 손보고 있음에도 불법공매도를 다루는 금융당국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시선이 아직도 차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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