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우리에게 원숭이는 동물원 울타리 안에 있는 동물이다. 그러니 동물원 밖에서 야생 원숭이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된다.
예전에 말레이시아 페낭 식물원에 갔을 때 일이다. 원숭이들이 우리 가족 뒤를 졸졸 따라오며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챘다. 물론 원숭이가 말로 보챈 게 아니고, 호시탐탐 먹을 것을 노리며 우리 뒤를 뒤따라왔다. 그것은 신기하기도 하면서 은근히 뒤통수가 켕기는 일이었다.
페낭 주택가 전봇대에 매달린 원숭이를 본 것은, 식물원의 경험과 또 달랐다. 훨씬 더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러나 크게 위협을 느끼지는 않아 이국적인 정취로 생각하고 넘겼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겨 원숭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덩치 큰 고릴라를 뜻밖의 상황에서 마주친다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원숭이 정도는 적으로 느끼지 않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중국 휴양섬 하이난에서 원숭이한테 봉변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 일을 겪고 난 뒤 나는 ‘원숭이는 과연 인간이 얕잡아 봐도 될 정도로 열등한 존재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이난에는 ‘원숭이 섬’이라는 곳이 있다. 하이난 주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섬이다. 그곳을 원숭이 섬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곳에 야생 원숭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곳 원주민에 해당하는 원숭이들에게는 자신들을 구경하러 몰려드는 관광객이 무례한 불청객이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숭이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굳게 믿으므로 원숭이들 생각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겠지만….
하여간 나는 야생 원숭이들이 바글거린다는 그 섬에 큰 호기심을 안고 들어갔다. 가이드가 “이곳 원숭이들은 생각보다 사납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지만,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봤자 즤들이 원숭이지, 뭐.’
그런데 갑가지 우리 집 막내 아이가 원숭이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원숭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 어깨 위로 뛰어올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데, 그걸 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합세하여 위협하자 원숭이는 사라졌지만, 그동안 우리 아이는 사색이 되어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지, 섬에는 의무실이 따로 있었다. 직원이 능숙한 솜씨로 원숭이한테 할퀸 상처를 적절히 치료했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우리 아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원숭이들이 참으로 영악한 게, 우리 가족이 겁을 먹었음을 눈치채고는 우리 가족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려 들었다. 원숭이들 공격 목표가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은 매우 서럽고 괴로운 일이었다.
섬 안에는 대장 원숭이도 있었는데, 그놈은 너무 사나워 아예 쇠사슬로 목줄을 채워놓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으르렁대며 날뛰는데, 도사견 수준의 난폭함이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재미 삼아 원숭이 섬에 들어갔다가 공포감만 잔뜩 안고 서둘러 나왔다.
원숭이들이 아직도 공격용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 흉포한 성정에 무기까지 들고 설친다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행세하며 거드름 피울 수 있을까? 하이난 대장 원숭이를 보기 전에는 이 질문에 대해 성급하게 답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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