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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계열분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안정적 지배구조 구축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LX그룹이 ‘경영승계’를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계열분리 때부터 구본준 LX홀딩스 회장은 장남 구형모 부사장에게 지주사 지분을 증여했으며, 그룹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LX MDI를 설립해 구형모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앉혔다.
2022년 12월 LX홀딩스의 완전자회사로 출범한 LX MDI는 그룹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 컨설팅, IT·업무 인프라 혁신, 미래 인재 육성 등을 담당한다. 각 계열사의 경영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데다, 사업방향 설정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삼성전자의 미래전략기획실이나 LG그룹 LG경영개발원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구형모 부사장이 경영수업을 받는 동시에, 그룹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등 자신의 경영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곳인 셈이다.
구형모 부사장이 LX MDI 대표이사를 맡은 지 2년 차가 되는 만큼 이제 존재감을 나타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룹이 몸집을 키우기 위해 추진했던 M&A(인수합병)의 성과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데다, 지난해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도 부진했던 만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장기 플랜을 수립하는 등 자신만의 경영전략을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LX그룹의 지주사 LX홀딩스의 최대 주주 구본준 회장과 특수관계인 보유 지분율은 43.82%로, 안정적인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지분 구조를 상세히 보면 구본준 회장이 20.37%, 그의 장남 구형모 부사장이 12.15%, 딸 구연제씨가 8.78%를 보유하고 있다. 구본준 회장이 계열분리 때 경영승계를 염두에 두고 보유지분 일부를 자식들에게 증여한 결과다.
구본준 회장은 지난 2021년 계열분리 과정에서 자녀들에게 자신이 취득한 LX홀딩스 지분을 증여, 승계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 구 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LG 지분 7.72% 중 4.18%를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로 매각해 5249억원을 손에 넣었고, LX홀딩스 지분 32.32%를 3003억원에 사들여 지분 40.04%를 확보했다. 이후 아들 구형모 부사장에게 11.14%, 딸 구연제씨에게 8.52%를 증여했다.
범LG가(家)의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승계가 유력한 구형모 부사장은 이후 2022년 9월부터 16차례의 장내 매수를 통해 보유 주식을 꾸준히 늘려왔다.
빠른 승진도 이뤄졌다. 1987년생인 구형모 부사장은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가 LG전자에 입사했다. 2021년 계열분리 이후 LX홀딩스 경영기획담당 상무로 선임됐으며, 1년여 만에 전무를 거쳐 부사장까지 빠르게 승진, LX MDI의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승계를 위한 어느 정도의 지분 확보가 이뤄졌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LX홀딩스 사내이사 진입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LX그룹을 이끌 수 있다는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LX MDI는 작년 매출 85억원, 영업이익 3억원을 달성했다. 계열사와의 거래로 이뤄진 실적이라는 점에서 성과로 여기기엔 아쉽다.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만큼, 더 중요한 것은 그룹 전반적인 성과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LX MDI 출범 후 새로운 먹거리 확보는 원활하지 못했다. 우선 HMM, 에코비트 등의 인수 후보자로 거론됐으나,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눈에 띄는 M&A는 LX글라스(옛 한국유리공업)가 유일했다.
인수 성적표도 아쉽다. 작년 1월 LX그룹은 LX인터내셔널을 통해 LX글라스의 지분 100%를 5904억원에 취득했다. LX글라스는 지난해 매출은 3549억원, 영업이익은 24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6.1%, 32% 증가하는 등 실적 성장세를 기록했으나, 지분가치는 하락했다. 장부가액이 취득 금액 대비 1249억원 줄어든 4655억원으로 확정됐다.
그룹 주력 계열사의 실적 또한 나빴다. 지난해 LX인터내셔널, LX세미콘 등 주요 계열사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줄었으며, 이에 따라 LX홀딩스의 순익 또한 54%가량 감소했다.
올해가 중요하다. 작년에 부진했던 만큼, 올해 행보에 따라 구형모 부사장의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는 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구본준 회장은 올 주주총회에서 ‘주력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발굴·육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후계자가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 능력을 증명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며 “구형모 부사장이 1년 동안 LX MDI의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계열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던 만큼, 이제는 성과를 보여줄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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