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제2의 ##파두## 사태를 막고자 기업공개(IPO) 개선 방안을 내놨지만, 업계에선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실사를 금감원 가이드대로만 했다면 향후 부실기업인 게 드러나도 주관사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주관사의 무리한 IPO 강행과 ‘묻지 마’ 청약을 막을 대책도 담기지 않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금감원은 제도 개선의 첫발을 뗀 것이라고 해명했다.
9일 금감원은 주관사(증권사)가 발행사(상장 준비 기업)를 실사할 때 살펴야 할 필수 항목을 선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IPO 주관업무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실사란 발행사가 상장했을 때의 시가총액, 즉 몸값을 정확하게 산출하기 위해 주관사가 발행사 사업 등을 검사하는 절차다.
◇ “필수 실사 항목? 오히려 면책 가이드라인 준 것”
이번 금감원의 조치는 지난해 파두 사태에서 비롯됐다. 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인 파두는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간 예상 매출액을 1203억원으로 제시했고, 덕분에 시가총액 1조5000억원으로 상장했다. 그러나 상장 직후 공개된 분기 실적에서 매출액은 6000만원에 불과했다. 시총 1조원짜리 기업이 직장인 1명 연봉만큼 번 것이다.
뻥튀기 상장 논란이 일자 금감원은 파두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압수수색 했고, 이번에 IPO 주관업무 개선방안까지 내놓은 것이다. 그동안은 주관사 실사 업무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었다. 금감원은 이 탓에 형식적이고 부실한 기업 실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기업 실사 항목과 방법, 검증 절차와 같은 준수 사항을 규정으로 만들기로 했다.
실사 필수 항목엔 ▲발행사의 신규 사업 추진 계획 ▲자금 조달 계획과 관련된 경영진 면담 ▲시중 정보·전문가 의견·회사 거래처 담당 부서 직원 면담 등의 방법으로 발행사 제출 자료 검증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접한 증권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한 증권사 IPO 업무 담당자는 “파두처럼 문제가 생겨도 금감원이 정해놓은 항목을 실사했다면 주관사는 책임을 피할 수 있다”며 “개선안이 면피 조항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필수 실사 항목을 일괄적으로 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발행사의 업종이 섬유부터 제약, 반도체까지 다양해서다. 주관사마다 실사 노하우가 상이하다는 현실도 증권사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획일화된 항목을 제시하는 게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실사할 능력이 안되는 증권사의 주관사 진입을 막지 않고서는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없다”고 했다.
◇ 주관사의 무리한 IPO 강행 막을 대책 안 보여
이날 발표된 개선 방안의 또 다른 큰 축은 수수료 구조 변화다. 현재는 발행사가 상장을 준비하다가 실패하면 주관사에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IPO 수수료가 사실상 성공 보수라는 뜻이다. 상장이 좌초되면 인력을 투입한 주관사는 한 푼도 챙기지 못하는 탓에 발행사의 상정 적격성이 낮아도 주관사는 IPO를 강행할 수 있다.
금감원은 이번 개선안에서 대표주관계약을 해지할 땐 해지 시점까지 주관사 업무에 대한 대가 수취에 관한 사항을 계약서에 포함하도록 했다. IPO를 추진하다가 엎어져도 발행사가 주관사에 수수료 일부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수수료는 시장에서 정해야 할 가격이라 금감원은 취소 시 수수료 수준까지 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취소 시 수수료가 매우 낮은 가격에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상장 주관사로 선정되려면 경쟁 증권사보다 더 좋은 조건을 발행사에 제시해야 해서다. 증권사로선 높은 취소 수수료를 부를 수 없는 구조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상장을 강행했을 때의 이득이 훨씬 클 것이기에 (취소 수수료 규정 신설이) 주관사의 무리한 상장 추진 의지를 꺾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책이 IPO 시장의 핵심을 꿰뚫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리나라 IPO의 문제는 상장만 했다 하면 최고 300% 수익을 낼 수 있어 발행사의 가치보단 ‘묻지 마’ 청약이 관례로 굳어진 점인데, 이에 관한 내용은 개선안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PO의 핵심은 기관 투자자의 수요 예측으로 공모가가 결정되는 과정”이라며 “현재 수요 예측 시장이 완전히 망가져 있어서 이걸 바로잡을 안이 나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첫 단추를 끼운 게 이번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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