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정부 정책 및 의사 상대 처분에 대한 불복소송을 넘어 정부 관료들에 대한 고발로 확전하는 양상이다.
의정갈등의 단초인 의대정원 2000명 증원안에 대한 집행정지 심문에서 회의록 등 근거 자료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회의록 유무를 둘러싸고 보건복지부·교육부 장·차관이 고발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이 서울아산병원 전원 논란이 일어나자 곧바로 의사 단체는 고발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정부 고위 관료조차 지역의료를 이용하지 않는데 지역 의료 활성화라는 모순된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는 취지였다.
의정갈등 소송전이 고위 관료에 대한 고발로 이어지면서 이들 혐의가 법정 공방의 한 축이 됐다.
“정부는 5월 10일까지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정한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서울고법 행정7부, 지난달 30일 ‘의대 정원 배정 처분 취소’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심문 중)
정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안을 놓고 의대교수·의대생·전공의 등이 제기한 행정소송은 법원의 명령 하나로 새 국면을 맞았다. 집행정지 신청을 심문하는 재판부가 “모든 행정 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정부 측에 근거 자료를 요청하면서다. 집행정지는 정부의 행정 처분에 대해 공공복리 침해 등 중대한 사유가 인정되면, 취소 행정소송에 대한 판결이 나기 전까지 처분을 정지하는 결정이다.
서울고법은 집행정지 신청을 모두 각하한 1심과 달리 정부가 정원을 2000명으로 결정에 대한 근거를 살피겠다고 나섰다. 이에 정부가 제출할 근거 자료에 관심이 모였다. 특히 △전국 40개 의과대학별 입학정원의 배분 결과를 논의한 교육부의 ‘의대정원배정위원회'(배정위) 회의록 △ 증원안을 최종 결정했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 △ 정부와 의료계의 일대일 회의였던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록이다.
그런데 증원안 관련 회의체를 담당한 교육부·복지부가 회의록 제출에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자 회의록이 아예 없는 거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급기야 의사단체는 “회의록이 없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나섰다.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와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는 7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박민수 차관, 이주호 교육부 장관·오석환 차관·심인철 인재정책기획관을 직무유기, 공공기록물 폐기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정부 고위 관료를 겨냥한 의사 단체의 소송은 한 사건이 아니다. 같은날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전원 특혜’ 논란에 휩쌓인 문화체육관광부·복지부 공무원을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문체부 1급 공무원 A씨가 당초 세종충남대병원에서 뇌출혈 진단을 받았으나, 서울아산병원으로 전원을 요구했다는 논란이다.
임 회장은 “정치인 고위 관료조차 이용하지 않는 지역 의료를 살린다면서 정부가 국가 의료체계를 황폐화할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 모임은 지난 3월 보건복지부 장·차관을 공수처에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사직서 수리 일괄 금지 명령, 연가 사용 불허 및 필수 의료 유지 명령이 전공의들의 휴식권, 사직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고위 관료를 겨냥한 고발장이 공수처에 쌓이면서 혐의 입증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 간에 신경전도 이어지고 있다. 복지부는 논란이 일자 보정심 회의록을 제출 의사를 밝히면서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록은 공식 기구나 법정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으니 보도자료로 대신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역시 공공기록물법상 배정위는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사단체는 여전히 보정심 회의록 존재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작성 의무가 없다고 한 의료현안협의체·배정위 회의록 역시 “공공기관의 회의록 작성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