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50원을 넘는 고환율과 유가 상승으로 증권사들이 70%가 넘는 상장사의 2분기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고환율에 따라 환차익을 보는 기업도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가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 것이다. 미국 대선과 맞물려 각국이 전기차 지원을 축소하면서 국내 2차전지 기업들에 직격탄이 되는 등 정치 이벤트도 기업 경영난을 키우는 양상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개별 기업의 실적 발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9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상장사 118곳 중 85곳(72%)의 2분기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준 시점은 원·달러 환율이 1385원인 지난달 30일이며 원·달러 환율이 1289원인 지난 연말과 비교했다. 상장사 118곳은 전체 상장사(2567곳) 대비 4.59%에 불과하지만 3군데 이상의 증권사가 실적 전망치를 내놓고 있는 업체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 증시의 대표 기업으로 봐도 무방하다. 증시 대표 기업 10개 중 7개사 남짓이 지난 연말에 내놓은 올 2분기 실적 전망치에 비해 현재 실적 전망이 더 나쁘다는 의미다. 금리 전망, 경기 부진, 외부 악재인 전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2분기 컨센서스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환율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고환율과 중동 위기 등 고유가에 에너지 업종의 상장사 7곳 중 4곳이 2분기 실적 전망치를 대거 낮췄다. 증권사들은 한화솔루션에 대해 연말 대비 2분기 매출액을 12.7% 낮췄으며 SK가스(-9.5%), 한국전력(015760)(-3.5%), 한전KPS(051600)(-3.3%) 등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는 2분기 매출액을 0.3% 상향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34.1%가량 대폭 내렸다. 원·달러 환율과 에너지 가격의 동반 고공 행진이 장기화하면 에너지 수입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
2차전지를 포함한 전자장비 및 기기 분야의 상장사 13곳 중 11곳도 모두 2분기 실적 전망치가 내려갔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경우 올 2분기 매출은 26.6%, 영업이익은 66.0% 각각 하향됐고 에코프로비엠(247540)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8%, 66% 낮아졌다. 2차전지는 해외 수출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환율 수혜 기업이지만 전기차 수요 감소와 맞물려 환차익의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는 분석이 주류였다. 특히 각국이 전기차 지원책을 축소하는 것도 실적 악화를 유인했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차전지 산업 전망에 대해 “2분기 실적은 가격 하락과 제한적인 수요 증가로 인해 성장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반도체 업종에서는 상장사 9곳 중 3곳을 제외한 6곳이 2분기 매출 전망을 하향했다. 원익IPS(240810)(-29.0%) 등이 실적 악화 기업으로 지목됐다.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한미반도체(042700) 등 3곳은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따라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수요 증가와 함께 고환율로 인한 혜택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콘퍼런스콜에서 고용량 낸드 수요 동향을 확인했다”며 “기존 AI 서버 내에서의 메모리 수요는 HBM으로 한정됐으나 낸드까지 확장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I 투자 축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으나 빅테크들의 클라우드 매출 내에서 AI의 기여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장사 대부분이 2분기 실적 기대치를 낮췄지만 하반기부터는 미국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우리 증시가 상승 국면에 돌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 11월에 실시되는 미국 대선도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는 실질적인 금리 인하 사이클 시작과 중국 경기 회복세 강화 등에 힘입어 강한 상승 추세가 예상된다”며 “한국은 반도체 업황과 실적 개선에 따른 성장주 반등이 가세하며 탄력적인 상승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