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불씨가 살아나면서 한국은행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조건의 폭이 다시 넓어지고 있다. 얼어붙은 고용시장 지표에 미국 경제계 인사들이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연내 금리인하 기대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에 따라 한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석 달 만에 다시 2%대를 기록했으며 1분기 경제성장률도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1.3%를 기록했다. 여기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 조기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내며 한은을 압박하고 나섰다.
8일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최근의 미국경제 상황과 평가’를 발표하면서 미국 성장세가 완만하게 둔화되고 노동시장 불균형 완화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디스인플레이션 지연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정책전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한은 뉴욕사무소는 “소비 등이 견조한 모습을 지속하고 있으나 그간 누적된 통화긴축의 파급효과 등으로 경제심리가 위축되는 등 성장세가 완만하게 둔화될 전망”이라면서 “전년 동월 대비 임금 상승세가 하락세를 지속하고 취업자수 증가 폭도 재차 낮아지는 등 점진적인 노동시장 불균형 완화 흐름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어 “모기지 금리가 7%대로 다시 높아짐에 따라 기존 주택을 중심으로 공급 부족이 지속돼 주택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면서 “서비스 물가를 중심으로 한 물가의 하방경직성에 따라 디스인플레이션지연 흐름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4월 통화정책방향 대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기준금리 인하 시점 지연 △예상보다 높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중동 사태 악화에 따른 유가·환율 변동성 등 세 가지가 달라졌다며, 올해 통화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시사한 바 있다. 한은 보고서 방향에 따르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변수가 또 한번 달라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미 경제계 인사들의 발언만 살펴봐도 기준금리 인하 시점 지연이 점쳐졌던 지난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 연준과 국제 금융계 고위 인사들은 잇따라 미국의 금리 인하를 시사하거나 지지했고 시장의 기대감은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으로 몰렸다.
연준 2인자로 불리는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6일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밀컨연구소 콘퍼런스에서 “현 통화정책이 매우 좋은 위치에 있다”며 “결국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행사에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우리가 보는 데이터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올해 안에 잡힐 것이라고 말한다”며 “결국 연준은 올해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당장 금리 인하 횟수에 대한 시장 전망은 바뀌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12월까지 연준이 금리를 0.25%포인트씩 두 차례 인하하는 것을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12월까지 한 차례 인하 전망이 가장 컸다.
다만, 최근 상황에 따른 미국의 금리 인하 확신은 이르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 고용지표 하방 서프라이즈로 노동시장의 냉각 징후가 나타났지만 조기 금리인하로 이어지긴 불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정예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미국 4월 고용지표 결과 및 평가’ 보고서에서 “최근 2년간 빈번한 고용의 상방 서프라이즈와 고용이 아직 견고함을 감안할 때 금리인하 여건을 형성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둔화세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노동시장이 견고함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균형을 회복해 가는 가운데 향후 디스인플레이션의 진전 여부가 금리 경로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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