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140조원 규모로 급성장했지만, 투자 자금은 국내 주식이 아닌 해외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에 쏠리고 있다. 국내 주식형 ETF 설정액은 3개월 새 6000억원이 줄어든 반면, 해외 주식형 ETF 설정액은 같은 기간 3조원 가까이 늘었다. 국내 증시 신뢰도가 떨어진 투자자들이 ETF를 통해 해외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인데,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에서의 이탈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장세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액티브 ETF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8일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이달 3일 기준 국내 주식형 ETF 설정액은 34조7872억원으로 3개월 전인 지난 2월 5일(35조4233억원)보다 6261억원 줄었다. 반면 해외 주식형 ETF 설정액은 같은 기간 2조9507억원 증가했다.
국내 주식 반등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종목에서 자금이 많이 빠져나갔다. 개인이 최근 3개월간 가장 많이 순매도한 상품은 코스닥150지수의 일일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KODEX 코스닥150레버리지’ETF다. 이 기간 개인의 순매도 규모는 3338억원이다. 개인은 코스피200 지수 일일 수익률의 2배 수익을 내는 ‘KODEX 레버리지’ETF도 3205억원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을 1배 따라가는 ‘KODEX 200′ETF의 개인 순매도 규모는 756억원이었다.
투자 자금은 해외 주식형 ETF로 옮겨갔다. 최근 3개월간 개인의 순매수 ETF 상위 10개 중 9개가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개인은 이 기간 미국 대표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추종하는 ‘TIGER 미국S&P500′ETF를 421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미국의 우량 배당주 100종목을 편입한 미국배당다우존스를 기초지수로 삼는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ETF(3039억원)와 나스닥100 지수를 따르는 ‘TIGER 미국나스닥100′ETF(1667억원)도 순매수 상위권에 올랐다. 이밖에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ETF(1094억원)와 ‘KODEX 미국반도체MV’ETF(996억원) 등 미국 반도체 종목을 담은 상품도 인기를 끌었다.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보다 해외 주식을 선호하는 건 국내 주식 투자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등 꾸준히 오르는 글로벌 증시와 비교해 국내 증시는 수년째 박스권에 갇혀 있어 투자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증시를 살린다는 취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 역시 줄고 있다. 최근 발표된 세부안이 기업 자율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국내 ETF 시장이 커지더라도 해외 주식형 ETF로 자금이 쏠린다면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을 막기 힘들어진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 시장과 ETF 시장이 함께 성장하기 위해 액티브 상품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액티브 ETF는 시장 변동성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 높은 수익률을 내기에 유리하다. 패시브 ETF는 기초 지수를 90% 추종해야 하지만, 액티브 ETF는 기초 지수를 70%만 추종하고 나머지 30%는 펀드 매니저가 자유롭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도 된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액티브 ETF의 운용 편의성과 높아진 선호도를 반영해 상품을 많이 내는 추세다. 올해 들어 국내 상장된 ETF 유형 중 액티브 상품이 56%로 패시브 상품(44%)보다 많았다. 운용사 한 관계자는 “주식형 액티브 ETF가 처음 등장한 2020년 이후 현재까지 약 4년간 좋은 성과를 내면서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면서 “다만 액티브이기 때문에 패시브보다 부진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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