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올해 1분기 실적에서 7분기 만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가운데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국산 제조사 제품을 확대하겠다고 나서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최근 인수한 파페치 손실 등이 수익성 지표에 영향을 미쳤지만, 김 의장이 중국 이커머스의 가파른 성장세를 고려해 위기경영을 강조하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직구액은 매년 50% 이상 성장세를 거듭한 반면, 쿠팡 로켓배송 등 국내 주요 비즈니스 매출은 20% 성장에 그치고 있는 만큼 유통업계에서는 “쿠팡이 선제적으로 고객 투자를 늘려 중국 커머스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직구 매년 50%씩 성장할 때 쿠팡은 20% 머물러
쿠팡이 8일 발표한 1분기 실적에 따르면, 쿠팡은 이번 분기 처음으로 9조원대를 넘어선 매출 9조450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28% 늘었지만, 이번에 신규로 반영한 파페치 매출(3825억원)을 제외하면 9조680억원(23%)이다.
쿠팡의 ‘분기 흑자 릴레이’는 이번에 중단됐다. 쿠팡의 영업이익은 531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61% 줄었고,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분기 1160억원에서 이번에 당기순손실(318억원)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쿠팡이 분기 당기순손실을 낸 것은 지난 2022년 2분기(-952억원) 이후 7분기 만이다. 파페치로 인한 손실은 1억1300만달러(1501억원) 발생했다.
김 의장은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중국 커머스 진출에 따른 위기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여전히 성장하고는 있지만, 5600억달러 규모의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낮은 상황에서 중국 커머스 업체들의 진출로 유통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며 “소비자들이 클릭 한 번에 몇 초 만에 다른 쇼핑 옵션으로 전환하며, 더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소비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알리와 테무 진출로 쿠팡에서만 구매하는 소비자 ‘락인 효과’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강조한 대목이다.
김 의장이 공식 컨퍼런스콜에서 중국 커머스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시장 변화에 대응해 김 의장은 이날 한국 제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국산 제품 구매와 판매 규모를 지난해 17조원(130억달러)에서 올해 22조원(160억달러)으로 늘리고, 와우 멤버십 혜택도 5조5000억원(40억달러)으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산 제품과 멤버십 투자 규모는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30%, 40% 가량 늘어난 수치다.
김 의장의 발언에 업계에서는 당장은 쿠팡 매출이 높더라도 중국 커머스가 최근 수년간 고속성장한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중국 직구 등과 비교해 쿠팡의 매출 성장세는 높아지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알리, 테무 등 중국 직구액의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지난 1분기 54%로, 로켓배송·로켓프레시 등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매출 성장률(20%)의 2.7배에 달한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의 1분기 결제액은 8196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60%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중국 직구는 지난 2022년 전년 동기 대비 47%, 2023년 53% 등 매년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이번 1분기엔 성장세가 더 높아진 것이다.
반면 쿠팡의 전년 동기 대비 프로덕트 커머스 매출 성장률은 2022년 26%, 지난해 19%, 올 1분기 20%를 기록하며 20% 전후에 머물러 있다. 특히 지난 한해 차이나 커머스 성장률은 더 가팔라졌다.
중국 직구액은 지난해 1분기(6095억원)와 비교해 4분기(1조654억원) 75% 성장했는데, 쿠팡 프로덕트 커머스 매출은 같은 기간 15% 늘어났다.
알리와 테무의 최근 1년 매출은 약 3조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이는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한 쿠팡의 2017년 매출(2조6846억원)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 한국 매출이 3조원에 육박하는 알리와 테무는 지금 성장세라면 올해 8조원까지 갈 수 있다”며 “미국이나 유럽은 차이나 커머스에 강경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달라 이들이 공격적으로 나오면 쿠팡 등 토종 커머스에 큰 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일·새벽배송, 멤버십 경쟁력은 쿠팡이 우위
나아가 1분기 당기순이익 적자전환으로 여전히 6조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가 줄어들지 않아 향후 투자 여력이 중국업체와 비교해 낮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쿠팡의 1분기 누적 결손금은 5조8159억원(43억7800만달러)로, 지난해 1분기(5조5908억원·43억8300만달러)보다 4% 늘었다.
반면 통계분석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알리바바그룹의 지난 10년(2013~2023년) 누적 당기순이익은 152조원에 달한다.
홍콩과 뉴욕증시에 이중상장한 알리바바그룹의 시가총액은 530조원에 육박하고,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170조원, 23조3000억원을 거뒀다. 쿠팡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0.5%로, 지난해 1.9%와 비교해 낮아졌다.
알리와 테무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한 만큼, 앞으로 더 가파른 성장세가 점쳐지고 있다. 알리는 지난해 말부터 신규 회원 가입 이벤트를 강화하면서 ‘K-베뉴’ 한국관을 열었다.
수수료 제로 혜택을 내걸고 CJ제일제당, 삼성전자 등 인기 브랜드를 유치하고 있다. 올해는 신규 물류센터를 증설한다.
지난해 7월 첫 한국에 서비스를 시작한 테무도 최근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온라인 마케팅에 나섰다.
와이즈앱리테일 굿즈에 따르면, 지난 3월 알리의 사용자 수(858만9000명)과 테무(823만8000명)의 합산 이용자(1682만7000명)는 쿠팡(3090만8000명)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5500만명의 사용자를 끌어들인 틱톡의 이커머스 플랫폼 ‘틱톡샵’, 패션업체 ‘쉬인’ 등이 본격 상륙할 경우 올해 중국 ‘4대장’ 사용자 수는 4000만명을 넘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쿠팡은 알리의 투자에 대응해 최근 3조원 이상을 투자해 물류센터 신규 운영과 도서산간지역을 포함한 전국 로켓배송을 확대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다만 아직 알리와 테무는 익일·새벽배송 경쟁력과 와우 멤버십 같이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서비스가 없는 만큼 쿠팡이 경쟁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최근 중국산 유해물질 이슈 등으로 중국 커머스 소비 민심이 주춤한 만큼, 쿠팡이 품질과 가격이 검증된 국산품을 늘리고 멤버십 충성고객 혜택을 늘릴 경우 중국 업체들과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자금력과 성장 속도가 쿠팡보다 월등한 것이 사실”이라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유통시장 환경에 접어든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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