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별세한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유산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시작될 전망이다.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측이 유류분(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유족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청구 소송에 나서기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청구 금액을 천억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8일 투자은행(IB) 및 법조계에 따르면,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유류분 청구 소송에 앞서 법률대리인을 선임하기 위해 최근 복수의 법무법인과 접촉했다. 그중에는 대형 로펌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효성 측도 법무법인 선임 절차를 밟고 있다. 다만 이는 상속세 신고를 위한 목적이다. 복수의 대형 법무법인으로부터 제안서를 받았는데, 당초 지난달 말까지 어느 곳을 선임할지 확정하기로 했으나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상속세 신고를 대리할 로펌을 선임하는 것이지만, 해당 로펌이 향후 유류분 청구 소송 건에서도 피고(조현준 회장·조현상 부회장)를 대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실상 유류분 청구 소송까지 함께 담당할 로펌을 선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효성 입장에선 신중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법무법인들이 효성 측에 낸 제안서에는 향후 조 전 부사장이 청구할 유류분 추정 금액까지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효성 측 대리는 대형 로펌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 경쟁이 치열한 게 당연하지만, 조 전 부사장 쪽은 과연 어떤 로펌이 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형 법무법인들은 효성과 관련된 일을 맡고 있거나 앞으로 수임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 전 부사장을 대리하면 이해관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조 전 부사장이 선임할 수 있는 변호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 1심을 맡았던 김현정 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현 법무법인 바른 소속),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대리하고 있는 김수정 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현 법무법인 리우 대표변호사) 등 효성과의 이해관계 충돌이 없을 만한 전관 출신뿐”이라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2014년 효성그룹 계열사 대표들과 친형인 조현준 효성 회장 등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뒤 형은 물론 동생인 조현상 부회장, 그리고 아버지와도 의절해 교류가 끊어졌다. 조 명예회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긴 했지만 짧게 머물렀다. 전광판에 공개된 유족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청구할 유류분이 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유류분 금액은 소송 전 확정할 필요가 없으며, 우선 일부 금액에 대해서만 소를 제기한 뒤 추후 금액을 변경할 수 있다.
한 가사 전문 변호사는 “상속 관계가 확정이 안 돼서 재산 분할이 정해지지 않으면 유류분을 확정하기 어렵다”며 “고인의 사망 후 1년의 기간이 있으니 통상적으로 일부 금액만 청구하고 나중에 유류분을 확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류분 청구 소송은 고인이 사망한 후 1년 안에 제기하는 게 원칙이다. 즉 조 전 부사장은 2025년 3월까지 소를 제기해야 한다. 올해 9월이 상속세 납부 기한이지만 유류분 청구 소송과는 관련이 없다. 조세당국 입장에선 누구에게서든 일단 세금을 받으면 되니 효성그룹 쪽에서 일단 납세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유류분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는 현재로선 효성그룹 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지난달 25일 헌재는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4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조 전 부사장의 경우 아버지 재산에 대해 유류분을 청구하는 것이므로 이번 위헌 결정과는 관계가 없다.
다만 헌재는 학대, 유기 등 ‘패륜’을 저지른 가족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게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며 이를 위해 2025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판정했는데, 효성그룹 측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부모에게 패륜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조 전 부사장의 패륜 여부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개정 법의 소급 적용이 가능한지, 소급 입법이 된다면 기준을 어느 시점(상속인의 사망 시점 혹은 유류분 청구 소송 제기 시점 등)으로 잡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가령 유류분 청구 소송 제기 시점이 기준이 된다면, 조 전 부사장은 법 개정 전에 소를 제기할 경우 소급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소급 여부도 개정 법의 부칙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가사 전문 변호사는 “조 전 부사장 입장에서는 가급적 빠르게 유류분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싶겠지만, 효성 입장에선 개정법하에서 패륜까지 다퉈야 할 테니 소송을 장기화하는 게 무조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효성 쪽에서 소송을 빨리 끝내주지 않으면 패륜이 핵심 쟁점이 될 것이고, 그러면 조 전 부사장 쪽에 별로 승산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청구할 유류분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 주목하고 있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보유했던 효성그룹의 주요 상장 계열사 지분 가치만 7000억원에 달한다. 조 전 부사장은 유류분 소송에서 이길 시 유언 등과 관계없이 법정 상속분(22.2%)의 절반을 상속받을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요구할 수 있는 자기 몫이 천억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다른 형제들인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이 이미 아버지로부터 증여를 받은 만큼, 이 금액을 모두 더한 값을 유류분 산정 기초 재산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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