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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보기] 수원 화성이 완전 복원됐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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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지난 4월 하순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화성행궁이 완전 복원되었다. 오랫동안의 공사 끝에 우화관(羽化館)과 별주(別廚) 등 두 주요 건물이 복원돼 현판 제막식도 거행되었다.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수원에 행차했을 때 거처하던 임시 궁궐로, 모두 576칸이나 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행궁이다.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에서부터 수원 쪽으로 옮겨 현륭원으로 높여 만든 후 아버지의 능을 지켜 줄 든든한 성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듬해인 1790년 수원 팔달산 아래에 새 도시 건설을 위한 설계가 시작되고 1794년부터 본격 공사에 들어가 만 3년 후인 1796년 화성이라는 새로운 계획성곽도시가 완성된다.

우화관 현판 제막식 2024년 4월 24일/ 사진 수원시청
우화관 현판 제막식 2024년 4월 24일/ 사진 수원시청

성이 완성되기 1년 전 정조는 화성 옆에 지은 행궁의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는 진찬연을 열었고 이어 해마다 이곳을 방문했다. 화성은 6·25전란 등을 통해 많이 허물어졌다가 축성 200주년인 1996년부터 복원 공사를 벌여 2003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고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다만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 이후 본래 모습을 잃은 채로 있다가 이번에야 복원된 것이다. 이로써 화성은 본성과 행궁까지 전체가 사실상 완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복원식 날 이재준 수원시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축제로 뽑힌 ‘수원화성문화제’와 연계해서 전 세계에 수원 화성과 대한민국의 특별한 가치를 잘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수원시장도 화성이라는 뛰어난 유산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수원 화성의 축성이 정조의 효심에 의한 것임은 알아도 그것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함께 세계사에서 동 시기에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계획도시임을 모르고 있다.

수원 화성의 야경
수원 화성의 야경

화성이 만들어진 18세기 후반은 희망의 시대였다. 서양에서는 영국의 산업혁명으로부터 싹이 트기 시작한 자유라는 사상과 프랑스혁명으로 촉발된 평등이라는 사상이 미국의 독립으로 마침내 현실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동양에서는 청나라가 강희제(康熙帝), 옹정제(雍正帝) 등 뛰어난 황제들의 치세를 지나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1796) 시대 최대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중국의 동쪽에 있는 조선왕국에서는 건국 이후 근 400년을 맞아 21대 영조와 22대 정조라는 걸출한 왕을 만나 새로운 문예부흥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일본은 조선에서 전래된 주자학을 바탕으로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과 교감을 주고받으며 일본의 근대정신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18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10년대인 1790년부터 지구상에 두 개의 새로운 도시가 서양과 동양 두 군데에서 동시에 세워지고 있었음을 우리들은 잘 모르고 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새로운 이상을 내건 아메리카합중국은 영국군이 물러가고 독립은 했지만 여전히 13개 주의 이해가 상충되자 독립적으로 연방의 일을 다룰 수 있는 행정수도가 필요하게 됐다. 거센 논의 끝에 중간지점인 포토맥 강변에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새 수도를 세우기로 하였다. 새 수도의 설계자로는 프랑스의 공병소령 출신인 피에르 샤를 랑팡(Pierre-Charles L’Enfant)이 위촉되었다. 랑팡 소령은 새 수도가 단순히 13개 주의 수도로서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이끌 큰 나라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상징하는 설계를 포토맥 강변 허허벌판에 그리기 시작한다.

랑팡이 그린 워싱턴 전체 플랜/위키미디어 커먼즈
랑팡이 그린 워싱턴 전체 플랜/위키미디어 커먼즈
   화성전도/수원화성박물관 사진
   화성전도/수원화성박물관 사진

할아버지인 영조가 52년간이나 재위에 있다가 승하하자 정조는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난 같은 해인 1776년 제22대 왕으로 등극한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억울하게 죽은 생부 장헌세자(莊憲世子)의 유택을 수원 쪽으로 크게 옮겨 세우고 해마다 참배를 한다. 참배 후 돌아설 때에는 가기 싫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는 지지대가 지금도 남아있거니와 그처럼 효심으로 가득 찼던 정조는 아버지의 유택을 길이 지켜 줄 든든한 성을 쌓고자 했다.

정조 14년인 1790년부터 팔달산 아래 숲과 벌판이었던 현재의 수원시 자리에 새 도시 건설을 위한 금을 긋는 작업이 시작된다. 성의 건설은 1794년부터 3년 만인 1796년에 끝난다. 4대문과 성벽 등 동양의 전통적 축성 구조에 공심돈과 포루 등 서양식 성채 방어 시설이 반영되고 거중기 같은 건축 기술이 활용된 거대한 선진 계획도시가 완성된 것이다

화성 공심돈루(空心墩樓). 성 안팎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높은 망루이다. 
화성 공심돈루(空心墩樓). 성 안팎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높은 망루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화성이 설계에 들어간 바로 다음 해인 1791년에 설계를 시작, 1790년대 후반에 공사를 마무리하고 1800년에 업무를 시작한다. 이해 조선에서는 새로운 계획도시를 만들어 효심을 길이 전해주게 한 정조대왕이 세상을 떠난다. 1790년에서 1800년 사이에 조선의 화성과 미국의 워싱턴은 각기 자기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구현할 도시를 동시에 만든 것이다.

인류사에 이러한 사례가 어디 있는가? 동양과 서양이 각기 추구했던 최고의 이상, 곧 동양의 효심과 서양의 자유평등이 1790년대에 바로 별도의 계획도시로 꽃 핀 것이다. 1776년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과 1776년 조선왕국의 정조대왕 즉위는 이러한 인류사의 큰 꽃봉오리를 피우기 위한 세계사적인 암시이자 신호탄이었다.

묘한 것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중국인들이 한자로 번역할 때 華盛頓(화성돈)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화성(華城)과 미국 워싱턴의 한자 표기가 사실상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화성(華城)이 꽃의 도시라면 중국인들이 워싱턴을 한자로 표기해 부르는 화성돈(華盛頓)이란 이름도 꽃이 무성하다는 뜻이 된다. 어떻게 이렇게 수원의 화성과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도시를 만드는 연대에서부터 만들려고 하는 의도, 그리고 이름에서까지 일치하는가? 그러기에 두 도시의 축성은 인류 문명사의 큰 사건인 것이다.

화성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수원시청 사진
화성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수원시청 사진

그런 역사적,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지만 우리들은 여기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수원의 화성을 소개할 때 보면 정조의 효심으로 발원된, 갖가지 축성기술을 동원한 우수한 성곽이라는 점만이 부각된다. 그것을 세계에 자랑하겠다고 한다. 그저 눈앞에서 정조의 효심과 새로운 축성기술만 강조하는 데 머무르고 만다.

이런 때문인가? 최근 통일부의 유니콘 기자단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한 학생 기자가 미국 워싱턴이 계획된 도시이고, 북한의 평양도 6·25전쟁 때 폐허가 된 후 북한정권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계획도시라면서

“워싱턴 D.C.에는 미국의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건물들과 기념관, 기념탑 등이 있는데요. 평양에도 마찬가지로 북한의 주체사상, 김 씨 가족에 대한 우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건물, 기념관, 기념탑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라고 설명하는 글을 발견했다. 그 학생 기자는 평양의 주체탑과 워싱턴의 워싱턴 기념탑을 비교하는 사진도 올렸다. 우리의 학생들이 자라나면서 북한에 대해 이런저런 지식을 갖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외양만을 놓고 공산왕조의 세습을 위한 이념을 자유 평등과 같은 레벨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정조를 통해 당시에 제시된 우리의 화성이 갖고 있는 제대로 된 의미를 가르쳐주지 못하니, 이런 그 사이에 김씨 가족정권에 대한 우월성을 위한 도시를 긍정하는 듯한 발상이 등장하게 되는 것 아닌가?

워싱턴기념탑(왼쪽)과 평양 주체사상탑. 사진: 통일부 블로그
워싱턴기념탑(왼쪽)과 평양 주체사상탑. 사진: 통일부 블로그

수원시는 수원 화성이 완전체로 복원되면서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정조대왕의 효심과 애민사상을 다시 한 번 세웠다고 말한다. 여기에 애민사상은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앞으로 이곳에서는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등 갖가지 왕실 행사가 관광거리, 볼거리나 먹기리 위주로 재연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도시 건설의 뜻이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알아도 가르치지 않으면 진정한 관광이 아닌 껍데기 관광이 되고, 세계사적인 의미는 그대로 사장되고 말 것이다.

그동안 이런 사실을 수원의 관계자들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그 많은 관광안내서나 표지 어디에도 이런 사실을 반영하는 표현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세계사의 사건을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 나아가서는 외국에 나가는 책자에도 당연히 실어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우리가 세계적인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거나 알리지 못하니 화성을 그저 평범한 성곽 도시 정도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데일리임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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