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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이 1000억 원 이하인 상장사는 1억 원씩 가진 투자자 열댓 명만 모아도 주가조작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국 증시 문제 중 하나는 시총 규모가 작은 기업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장(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7일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중 하나로 시장 규모 대비 지나치게 많은 상장사 수를 꼽으면서 이같이 말했다. 학계에서는 시총이 적고 거래량도 많지 않은 상장사들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세조종 등 각종 불공정 행위에 악용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밸류업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꼬집는다.
실제 세계거래소연맹(WFE)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및 나스닥 시가총액은 49조 8448억 달러(6경 7639조 원, 환율 1357원 기준)로 한국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시장의 시가총액 1조 9116억 달러(2594조 원) 대비 26배로 나타났다. 반면 상장사 수는 뉴욕증권거래소 2256개사, 나스닥 3411개사 등 5667개사로 한국 전체 상장사 2570개사 대비 2.2배 수준에 그쳤다. 우리나라 증시가 그만큼 내실 없이 웃자라기만 했다는 의미다.
한국 증시는 시총 규모가 비슷한 대만 등과 비교해도 상장사 수가 40% 이상 많다. 대만증권거래소와 타이베이거래소 전체 시가총액은 2조 983억 달러(2847조 원)로 한국을 앞서고 있으나 상장사 수는 1827개로 740개 이상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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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IPO)나 물적·인적 분할 등으로 상장하는 기업은 계속 늘어나는데 퇴출 기업은 거의 없다 보니 상장사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 규모 대비 상장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많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시세조종 등에 악용될 여지가 크고 좀비기업들이 정상 기업으로 흘러갈 자금을 끌어가는 폐해도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무엇보다 상장만 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밸류업의 걸림돌이다.
상장 기업 수가 2500개사가 넘는데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보고서를 내는 종목은 500개 안팎인 것도 이런 폐단의 연장선에 있다. 소형 종목 대부분이 증권사 분석 대상에서 제외돼 정보 비대칭성도 커진다. 더구나 상장사 수가 너무 많으면 전체 종목을 반영한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도 떨어져 투자자 외면을 받기도 쉬워진다. ‘상장폐지는 투자자 보호 때문에 쉽지 않고 상장 입구를 좁히는 것은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려워도 장기 성장 가능성이 있는 벤처에 상장 기회를 뺏는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가로막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 교수는 “자율적인 밸류업과는 별개로 상장폐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상장 요건을 강화하고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좀비기업을 퇴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IPO 조건 강화와 함께 대기업 인적·물적 분할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선중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벤처기업이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상장밖에 없다 보니 상장이 너무 많이 이뤄져 관리하기 힘들어진 측면이 있다”며 “상장사를 강제로 상장폐지할 수 없는 만큼 당국이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IPO 통로를 조금 더 좁힐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은 연평균 7.5%씩 상장사 수가 늘었으나 최근 중국판 밸류업 정책으로 불리는 ‘신국9조’를 통해 IPO와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는 등 감독 강화에 나선 상태다.
아울러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 운용사인 앰플리파이의 크리스티안 마군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서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것은 산업과 인프라, 세계적 브랜드 등을 고려했을 때 ‘모욕적’”이라며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만큼 조금 더 능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밸류업 이행과 관련해 강제성이 없다 보니 소액주주의 이익을 제고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가령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개정하는 것도 한 방안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재계가 우려하는 부분이 있지만 반대급부로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하면 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포이즌필과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하면 대주주도 경영권 위협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밸류업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며 “정치권도 열린 자세를 갖고 법 개정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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