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단기 주가 부양을 노리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공시 규정 위반에 따른 처벌 수위가 세지 않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 최고 상장 폐지까지 가능한데, 이런 경우는 과거 사례를 보면 전혀 없었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코스피 상장사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건수는 34건인데, 이 중 19건이 벌점 0점이었다. 평균 벌점은 2.25점으로, 벌점에 따른 페널티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었다.
벌점 10점을 한꺼번에 받아봐야 하루 매매거래 정지에 그친다. 그리고 최근 1년 동안 한 번에 10점 이상을 받은 건 ##이아이디##가 유일했다. 또 최근 1년간 벌점이 15점 쌓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데, 이에 따른 제재는 ▲1일 매매 정지 ▲3자배정 유상증자 시 6개월 매각 제한 ▲신용거래 대상 종목 제외 등이다.
가장 최고 제재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1년 동안 추가로 벌점 15점을 받는 경우다. 이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오른다. 상폐될 수도 있단 얘기다. 하지만 규정상 그럴 뿐이고, 불성실공시법인 지정만으로 퇴출되는 사례는 없었다.
평균 벌점 2.25점은 불성실공시 제재심의기준을 고려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거래소는 위반의 동기와 위반의 중요성 등 2가지 축으로 벌점을 산정한 후 가중 또는 감경 사유를 고려해 최종 벌점을 확정한다. 2점이면 ‘경미한 과실+통상의 위반’이거나 ‘통상의 과실+경미한 위반’ 수준이다.
벌점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상장사들의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힘들어서다. 한국거래소는 상장사가 일부러 공시 규정을 위반했다는 정황을 발견해야 높은 벌점을 매길 수 있는데, 제재가 엮여있다 보니 상장사의 협조를 구하기 힘들다. 또 상장사마다 상황이 달라 위반 동기를 정확하게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감경 사유에 허점도 있다. ‘주주총회 분산 자율준수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최근 사업연도 정기 주총을 분산개최한 경우’처럼 공시와는 상관없는 사유가 벌점 감경 사유에 포함돼 있다. 3월에 주총이 집중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인센티브를 제시하다 보니 공시 벌점 감경 사유에 엉뚱한 사유가 들어온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상장사들에는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피할 수 있는 무적 방패를 쥐여줬다. 지난 2일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금융위는 “기업 경영의 결과가 공시한 예측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면책 관련 공시 문구를 명시했다면 불성실공시 적용 예외 대상”이라고 했다.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는 투자자 경고성 문구만 공시에 추가하면 공시 관련 제재는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주가 조작 세력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생긴 셈이라고 보고 있다. 장밋빛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공시해 주가를 끌어올린 후 면책 문구를 이용해 ‘경기 변동으로 어쩔 수 없었다’며 빠져나갈 수 있어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제도를 만들면 기업은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이미 기존 공시 제도를 악용한 사례도 많다.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등을 신규 사업 목적에 추가해 공시한 후 주가를 올려 부당이득을 챙기는 식이다. 실제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이 7개 테마 업종을 신규 사업 목적으로 추가한 상장사 233개사를 조사했는데, 이 중 55%가 관련 사업을 전혀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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