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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보기] 자선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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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저개발 국가를 여행할 때면 “1달러”를 외치며 달려드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많다. 그때마다 가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절대 돈을 주지 말라고 한다. 몰려드는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가이드는 다소 이론적인 설명을 했다. 그 1달러를 구걸시키기 위해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그러다 아이들이 커버리면 구걸도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로 ‘인에이블링(enabling, 조장)’이다. 남을 돕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해를 끼치고 이상행동을 조장한다는 뜻이다.

“자선을 거부하라.” 네덜란드 출신으로 멕시코 커피농장에서 공정무역을 창안한 보에르스마 신부의 주장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빈곤에서 탈출해 자존감을 가지면서 품위 있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선은 가난한 이들을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시킨다. 그래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자선을 거부하라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끼리 연대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길이라 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주체로 등장시켜 이전에 커피 중개상들과 다국적 기업들이 수익을 대부분 독점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생산자들은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었다.

‘빈곤포르노(Poverty Pornography)’도 가난한 사람을 객체로 삼는 데서 보면 같은 맥락이다. 가난을 소품처럼 활용해 자극적으로 연출하거나 조작해 가난을 끊어준다며 모금하는 것이 빈곤포르노다. 파리떼가 온몸에 달라붙어 있거나 흙탕물을 마시게 하는 것, 모금은 됐지만 아동의 인권과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개도국의 절대 빈곤 현상이 개선되면서 자극적인 모금 콘텐츠는 점차 줄었다. 그러나 지금도 TV를 틀면 국제개발 NGO의 빈곤포르노성 영상은 심심치 않게 뜬다. 그래서 국제개발민간협의회는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10대 기본원칙’을 제정하기도 했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가 발표한 ‘기빙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의 기부자들은 기부를 한 이유로 ‘사회적 책임감(30.8%)’과 ‘동정심(29.3%)’을 꼽았다. 주요 기부 이유로 꼽힌 동정심 혹은 이타심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회적 책임감으로 인한 기부가 늘어야 자발적이고 안정적 자선활동이 가능하다. 빈곤층의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사회적 변화를 부른다는 책임감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1835~1919)는 그가 사업을 일으킨 피츠버그시에 도서관과 공회당을 기증하겠다고 했다가 시의회에 의해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 그런데 얼마 뒤 피츠버그시는 그에게 도서관과 공회당을 지어달라고 간청해 왔다. 카네기는 두 말 않고 지난번보다 4배나 많은 1000만 달러를 기증했다. 자존심도 없냐고 질책하는 주변을 향해 그는 “명예와 감사를 받기 위해서라면 그랬겠지만 오직 피츠버그 시민을 위해서”라고 했다. 시민들 속에서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숭고한 무엇을 남겨놓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수래 만수거(空手來 滿手去, 빈손으로 왔다 가득 채워간다)”를 노래한 관정 이종환(1924~2023) 회장이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1895~1971) 박사가 이런 경우라고 할 것이다.

영어 자선(Charity)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사랑한다(Charitas)에서 나왔다. 그러나 ‘카리타스’가 ‘채러티’로 바뀌면서 사랑의 의미는 퇴색하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시혜(施惠)의 뜻으로 변질됐다. 기부받는 사람들의 자존감과 기부하는 사람들의 책임감을 연결해 주는 것이 투명성이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쓴 옥스포드대학의 윌리엄 맥어스킬 교수는 선의와 열정만으로 자선활동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자선활동에 대한 냉정한 순위 매기기를 제안했다.

이제는 제도적으로 투명성이 대세가 됐고 블록체인 같은 기술의 발전 또한 선악을 따지지 않고 투명성을 지향한다. 자존심과 책임감이 투명성으로 연결되면 자선은 사회를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래서 기부는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고귀한 것이고 기부받는 사람이나 기부하는 사람 모두가 변화의 주인이 된다. 공동체가 활력을 얻고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의 관계를 누릴 수 있다. 이렇다면 자선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데일리임팩트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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