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책준형)이 부동산신탁사들의 ‘시한폭탄’으로 대두되면서 책준형과 혼합형(책준형+차입형) 사업장을 다수 보유한 KB부동산신탁이 ‘풍전등화’ 신세다. 건설경기 침체로 자금조달과 분양이 어려워지면서 신탁사 고유계정을 투입해야 하거나 기존에 대여해 준 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84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한 상황에서 향후 부실 사업장 리스크가 확대되면 재무건전성 우려와 함께 정비사업 현장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6일 KB부동산신탁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KB부동산신탁의 책준형 사업장(준공사업장 제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72곳이며 총 PF대출 약정한도는 5조6206억원, 실행잔액은 4조20억원에 달한다. 작년 말까지 책준형 사업장에 이미 투입된 금액이 4조원이 넘고, 앞으로 1조6000억원 이상 더 투입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책준형 PF대출액 규모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국내 10개 부동산신탁사 중 KB부동산신탁이 가장 크다.
책준형은 신탁사가 시공사의 신용을 보강하고 기한 내 공사를 완수하도록 책임지는 방식이다. 시공사의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신탁사가 대체 시공사를 찾아 완공시키거나 대주단에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KB부동산신탁 책준형 확약을 맺은 사업장의 경우 영세·중소 시공사의 지방, 비주택(물류센터·지식산업센터) 현장이 대부분이어서 자금 회수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앞서 KB부동산신탁은 김포시 양촌읍 대포리 261-2번지 일원에 물류센터를 개발하는 사업(김포대포산업단지)에 책임준공확약을 맺고 PF대출 289억원을 투입했지만, 시공사와 대주단이 지닌달 초 차입금 만기의 연장 합의에 실패해 채무불이행(EOD) 사유가 발생하면서 총 1865억원의 차입금을 대신 갚아줘야 할 가능성도 있다.
또 인천 남동구 논현동 주상복합시설(이안논현오션파크) 개발사업 역시 당초 준공기한이 지난해 6월까지였으나 제1시공사인 대우산업개발이 지난해 8월 회생절차를 신청하며 준공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하면 KB부동산신탁이 자체 자금을 투입해 공사를 재개하거나, 1400억원 규모의 대출금을 대신 상환해야 한다.
KB부동산신탁이 총 228억원 한도로 현재까지 214억원을 보증한 인천 서구 원창동 ‘인천북항 C1 저온물류센터 신축사업’은 현재 시행사(동행건설)는 완전자본잠식, 시공사(일군토건)는 법정관리를 신청해 자금조달 및 공사 차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KB부동산신탁은 이에 대해 “임대차를 통한 물류센터 운영을 준비 중이며, 운영 이후 매각을 통해 자금을 회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준형뿐 아니라 혼합형 토지신탁 사업장도 부실 뇌관으로 떠오른다. 혼합형은 신탁사가 책임준공 확약을 하면서 차입형토지신탁처럼 신탁계정대로 사업비를 조달하는 방식이다. KB부동산신탁의 자금 437억원이 투입된 대전 서구 관저동 오피스텔(e편한세상 시티 도안) 개발사업의 경우 2022년 청약을 진행했지만 저조한 분양률로 인해 최근 후분양으로 분양방식을 전환했다.
책준형·혼합형 사업장 리스크가 커지며 KB부동산신탁의 신탁계정대는 지난해 말 기준 6859억원으로 2022년 2423억원에 비해 183% 증가했다. 신탁계정대는 일반적으로 사업비 조달이 어려운 곳에 신탁사가 고유계정(자기자본)에서 자금을 빌려주는 것으로, 분양률이 안 좋을 경우 신탁사 고유 자금의 손실로 돌아온다.
신탁업계 한 관계자는 “KB부동산신탁이 과거 대형 신탁사들이 안 들어간 지방, 비주택 사업장을 쓸어 담았는데, 최근 중소 시공사들이 무너지며 부담이 급격히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신탁사가 자체 자금을 투입해도 수익이 낮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책임준공의무를 포기하고 대주단과 소송전에 나서 자금을 회수하려는 사례가 앞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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