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자유기업원 이사장
총선뒤 포퓰리즘정책 요구 거세져
민생살리기 미명하에 돈풀기 걱정
자본축적 줄면 국가쇠퇴 깨달아야
지난 총선을 치르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면서 정치가 무엇인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정치가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서다. 정치란 국가의 책무를 수행하는 일이다. 국가는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해 만든 사회적 기구다. 자연 상태에서 개인이 혼자서 생명과 재산을 지키며 살아가기 어려워 서로 연대하여 살아가기 위해 만든 것이 국가다. 그래서 국가의 책무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기능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기구가 정부다. 그리고 그 정부를 중심으로 국가의 책무를 직접 수행하려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정치인이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할 일은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의 보호다.
지난 총선 때 이러한 책무를 다하겠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국민 모두를 위한 이러한 일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좇는 정치인이 대부분이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한 비전과 정책의 대결보다는 감정적인 진영 간 다툼을 극렬하게 벌였고, ‘선심성 돈 풀기’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했다. 한편 이런 포퓰리즘 공약들이 우리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줄 인식하지 못하고 많은 국민이 그런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졌고, 그런 정당이 다수당이 됐다.
총선 이후 벌써 우리의 미래가 걱정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총선에서 대승한 더불어민주당은 새 국회가 열리기도 전에 수조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양곡관리법과 농산물 가격 안정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단독 처리해 국회 본회의에 넘겼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재정건전성 고수 방침, 추경 거부 등 반(反)민생 정책을 전면 폐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심지어 이재명 대표는 총선 공약으로 제안했던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과 소상공인 대출 이자 1조 원을 깎아 주는 등의 ‘민생회복긴급조치’를 시행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단지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잘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생산해 번 소득을 다 소비해버리면 안 된다. 그중 일부를 저축해야 한다. 그 저축을 이용해 금융 수단에 투자하든가, 아니면 자본재를 구매해 생산성을 높여 재화 생산을 늘려 나중에 더 많은 소득을 올려야만 미래에 잘살게 된다. 벌어들인 소득을 다 써버리거나 빚내서 소비하는 현재지향적인 사람이 미래에 부닥치는 것은 피폐한 삶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계속 발전하고 부흥하기 위해서는 절약하고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의 삶도 나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성장이 멈추고 국가는 점차 몰락하게 된다. ‘선심성 돈 풀기’ 포퓰리즘 정책은 미래를 희생하여 오늘만 살겠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우리의 저축과 자본축적을 방해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으로 몰락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들, 그리고 그리스가 그러한 나라들이다.
오늘날의 민주정 체제에서는 표를 얻어서 당선돼야 집권할 수 있으므로 정치인과 정당은 국가의 미래보다는 현재의 당선과 집권에 열중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정당이 당선과 집권을 위해 내놓는 정책이 대체로 미래지향적이 아닌 현재지향적이다. 당선에 필요한 유권자들의 지지표를 확보하기 위해 증세, 재정팽창과 통화팽창을 통해 과다한 복지지출, ‘선심성 돈 풀기’ 등 현재지향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 이러한 것들이 보통 ‘민생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시행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정책들로 각 개인에게 돌아가는 수혜는 기껏해야 복지수당을 조금 받는 정도로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 이러한 정책들로 자본축적이 줄어들어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 국가는 점점 쇠퇴해 가고 많은 사람이 궁핍해진다. 결국 포퓰리즘 정책은 대다수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시행되지만, 의도한 효과는 달성하지 못한 채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국민과 정치인들은 이점을 인식해 각성하고 포퓰리즘 정책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진정한 정치가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그에 맞는 정치를 해주기를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남미행 급행열차’를 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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