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높아진 외화 변동성에 시중은행이 부담해야 할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달러화와 엔화 환율 등락이 커지자 외화자산에 대한 집단적 움직임이 같이 나타나면서다. 아직 시중은행의 대응 역량은 양호하지만 외화 변동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달러 예금 잔액은 올 1월 593억5551만 달러에서 지난달 558억520만 달러로 약 6% 감소했다. 총 4조8000억원가량 예금을 3개월에 걸쳐 인출해 갔다는 의미다.
엔화도 꾸준히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같은 기간 1조1574억엔에서 1조2412억엔으로 3개월 연속 늘었다. 지난달 기준 잔액은 1년 전(5978억1310만엔)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달러와 엔화 예금의 집단적 움직임이 나타나는 배경에는 환차익이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6일 역사상 네 번째로 1400원대를 넘으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지난달 29일 160엔을 돌파하며 34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다. 환차익을 노린 이들이 달러는 원화로 바꾸고, 엔화는 사들이며 외화자산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도 아직 은행권의 외화자산 리스크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통화불일치 지표는 모두 양호했다. 통화불일치는 환율 변동성에 따른 충격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로 외화자산과 외화부채 간 차이를 의미한다. 차이가 클수록 환율 변동성에 의한 충격이 클 수 있다.
KB국민은행은 유일하게 지난해 말 외화자산(460억9000만 달러)이 외화부채(461억8500만 달러)보다 9500만 달러 적어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해외 지점에서 매입한 원화 채권이 본점에서 집계할 때 외화자산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다른 4대 시중은행은 외화자산과 외화부채 규모가 동일했다.
시중은행의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도 안정적인 상황이다. 작년 말 기준 평균 외화 LCR은 약 154% 수준으로 규제 기준인 80%를 훨씬 웃돈다. 1개월간 외화가 순유출되는 위기 상황 시에도 외화 현금화 자산을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하고 있어 유동성 충격에 대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강달러·엔저 현상 장기화에 대한 선제적 대비는 필요하다고 금융권은 보고 있다. 달러는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반면 고환율 속에 조달 비용 부담 등 현금성 자산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환율이 높아지면 외화부채의 원화 환산 시 은행은 환차손이 불가피하다. 엔화 역시 향후 환율이 오르는 시점이 되면 대규모 예금 인출 가능성도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환율이 올라가면 환차익을 노리고 환전하는 수요가 많아진다”며 “최근 달러 예금이 많이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는 조달 금리가 가장 낮은 요구불예금이기 때문에 은행은 더 비싼 값을 내고 외화자금을 조달해 와야 하는 등 리스크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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