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운구곡(谷雲九曲)에 사는 길종갑 화가의 이색 개인전이 화제다. 그는 지난 4일부터 고향인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삼일리 자신의 생업 기반인 약 900평의 토마토 농사지 비닐하우스에서 ‘향연(饗宴)’이라는 주제로 회갑 기념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개인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갤러리로 변신한 비닐하우스 안에 전시된 180여점의 작품들 때문만은 아니다. 개막행사에서 펼쳐진 지역의 주민과 각 지방의 미술인들이 함께한 퍼포먼스와 길 화가와 여러 평론가의 대화 시간들. 여기에 갤러리에 숨 쉬고 있는 토마토, 상추, 오이 등 각종 채소는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오는 31일까지 이어지는 개인전은 향연이라는 주제에서 말해주듯이 회갑을 맞은 길 화가가 특별히 손님을 초대해 베푸는 잔치다. 이선영 평론가는 “길종갑 작가에게 고향은 단순히 여러 지역 중 하나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다”라고 했다.
이 평론가의 말처럼 관람객들은 이 잔치에서 길 화가가 왜 곡운구곡 작가인지, 또 그가 왜 삼일리를 단순히 여러 지역 중 하나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지 이해하게 된다.
길 화가는 30년간 이곳에 터를 잡고 특유의 강렬한 붉은 빛의 색채로 곡운구곡 주변 풍경을 부감법으로 묘사해왔다. 이를 위해 기획도 수십년간 지속되어 온 작가의 화업 세계를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방향성과 맥락을 잡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그는 비닐하우스에 90년대 초창기 작업부터 9m가 넘는 신작 ‘이상한 풍경’에 이르기까지 자연 풍경이 공존하는 현실을 대서사시로 써 내려갔다. 이에 관람객들은 색다른 비닐하우스 갤러리에서 형식을 벗어나려는 작가의 남다른 의지를 느끼게 된다.
전시의 동선은 ‘사창리 사람들’, ‘곡운구곡’, ‘이상한 풍경’, ‘사라진 것을 찾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모든 작업의 한 가운데는 ’엄마의 정원‘이 있다. 이외에도 전시장 입구 정중앙에는 육십갑자 하나의 원을 상징하는 원형광장이 조성돼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마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문화 감수성의 경험치를 함께 나누게 된다.
권혁진 박사는 개막 첫날인 4일 ‘곡운구곡에 사는 화가’라는 주제로 길 화가와 대화하면서 “길 화가는 고단한 삶이지만 해학을 잃지 않는 화가”라며 “그 감동이 진중한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오는 18일 ‘이상한 풍경 속 시대성과 작가 의식’이라는 주제로 길 화가와 대화를 이어갈 박응주 평론가는 2021년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이상한 풍경’에서 “그의 그림 안에서 사람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신분과 연령대의 고만한 삶을 열심히 충실하게 수행하여 살아나가고 자연 또한 자신의 생을 살아가느라 바쁘다”고 해석한 바 있다.
길 화가는 개인전 의미에 대해 “곡운구곡이 있는 사내면 삼일리는 제 삶의 터전인 동시에 예술적 정신이 형성된 곳”이라며 “저와 잠깐이라도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을 위해 나의 터전에서 감동의 향연을 준비했고 감사한 마음으로 초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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