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9일,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 소속 채수근 일병(사망 후 상병 추서)이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의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 작업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14시간 만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현장은 폭우로 물이 불어나 유속이 굉장히 빨랐지만, 채 상병 등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못한 채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 그 배경에는 ‘대민지원 홍보’를 위해 해병대 글자가 잘 보이는 빨간티셔츠로 복장을 통일하라는 임성근 사단장의 주문이 있었다.
박정훈 대령(당시 해병대 수사단장) 휘하 해병대수사단은 관련자 및 관련부대를 수사하고 7월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임 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상북도경찰청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대면 보고해 결재를 받았다. 채 상병 유족에게 수사 결과가 전해졌으며 언론 브리핑도 준비했다.
그러나 30일 오후 상황은 급변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현 국방대학교 총장)의 통화가 이뤄졌고, 31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서실‧안보실 회의가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렸다. 이후 대통령실에서 이종섭 장관에게 최소 두 차례 유선 전화가 갔다.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앞두고 있었던 이 장관은 참모진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박 대령과 김 사령관 등에게 △언론브리핑 취소 △수사 결과 경찰 이첩 보류 등을 전화로 지시했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도 박 대령에게 사건 서류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고 전화로 요구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이러한 ‘구두지시’들이 부적절하다며 결국 8월 2일 이 장관의 기존 결재에 따라 경상북도경찰청에 수사자료를 이첩했다. 그러나 해병대 사령부는 박 대령을 보직해임했고 수사자료는 오후에 회수했다. 그 과정에서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현 경북 영주시·영양군·봉화군·울진군 국회의원 당선자)과 김계환 사령관의 통화,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과 유 관리관의 통화가 확인됐다.
8일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을 ‘집단 항명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집단적으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최대 사형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박 대령은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거부했다. ‘채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의 시작이다.
지난해 9월 발의된 ‘채상병 특검법’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68명 중 찬성 168명으로 가결됐다. 김웅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결에 반발하며 회의장에서 일제히 퇴장했다.
특검법의 정식명칭은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수사 대상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대통령실·국방부(군 검찰단·군법무관리관실·조사본부 등)·해병대 사령부·경북경찰청의 은폐·무마·회유 등 직권남용 및 이와 관련된 불법행위’ 및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
특검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자신이 소속되지 않은 교섭단체(민주당)에 특검 후보 추천을 의뢰하고, 해당 교섭단체는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4명을 추천받아 그중 2명을 선택해 대통령에게 다시 추천한다. 이후 대통령은 3일 안에 이들 중 1명을 임명해야 한다.
특검은 90일(준비기간 포함) 동안 수사하고, 대통령 승인을 받아 1회에 한해 수사 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다. 또 특검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이외의 수사과정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등 역대 특검에서도 규정된 내용이다.
채상병 특검법 통과에 대통령실은 강하게 반발하며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일 본회의 통과 직후 브리핑을 열고 “채 상병의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엄중 대응’ 방침을 밝혔다.
또 “협치 첫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민주당이 입법 폭주를 한 것”이라며 “여야 합치와 민생을 챙기라는 총선 민의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철호 정무수석도 이날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채상병 특검법은) 사법 절차에 상당히 어긋나는 어떻게 보면 입법 폭거”라며 “이걸 받아들이면 (사법 절차를 어기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거고 더 나아가서 (대통령의)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채상병 건은 지금 경찰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이라며 “대통령실에서는 이 절차가 끝나는 것을 기다려 봐야지 합법적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그는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의 통화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정희용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의를 무시한 거대야당의 횡포는 협치하라는 민의에 대한 역행이자,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한 사례로 헌정사에 오점을 남겼다”며 “정치 복원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힘자랑만 한다면 반드시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부디 국민의 눈을 두려워하길 바란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반면 범야권은 윤 대통령에게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수년간 현직 대통령부터 여당이 끊임없이 해 왔던 말이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며 “(윤 대통령은) 범인이 아닐 테니까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압박했다.
홍익표 전 원내대표도 “정치는 언제나 국민의 원칙과 국민의 기준에 따라 일해야 한다”며 “대통령실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에 민주당의 강력한 저항은 물론이고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대표 출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대통령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사에 대해 거부권을 공언하는 대통령은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로 특검법이 다시 국회로 돌아온다면, 개혁신당은 당론으로 재의결에 찬성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한 이 대표는 “우리는 머릿속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기리지 않는다”며 “오직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21대 국회에서 소신 있고 올바른 의정활동을 한 국회의원으로 기록에 남는 방법”이라며 여당 의원들의 재의결 참여를 호소했다.
이밖에 군인권센터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셀프 면죄부가 아닌 셀프 탄핵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참여연대 역시 “민심을 거스르고 채상병 특검법마저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국민이 대통령을 거부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