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일·중) 회원국들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의 재원구조를 납입자본(paid-in capital) 방식으로 개편하는 데 합의했다. 위기 시 각국에서 통화스와프 자금을 조달·공급하는 현행 ‘약정기반 시스템’에서 평시에 자금을 조달해두고 지원하는 ‘펀드 시스템’으로 재원 구조를 개편하는 방식이다.
CMIM 기금화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공들인 의제다. 한국은 공동의장국으로서 CMIM의 한계점을 지적하고 납입자본 방식을 바탕으로 하는 CMIM 재원조달구조 개선방안을 제시하며 논의를 주도해왔다. 이번에 ‘납입자본 방식의 이점에 합의한다’는 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면서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열린 ‘제27차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한국이 공동 의장국인 라오스와 함께 회의를 주재했다. 한국에서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이창용 한은 총재가 참석했다.
아세안+3는 CMIM 기금화를 위해 IMF(전세계), ESM(유로존), RMBLA(중국 등) 등 다양한 모델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내년까지 구체적인 모델을 확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한국은 구체적인 재원조달 모델, 납입자본금의 외환보유액 인정 방안, 거버넌스 구조 등 주요 이슈에 대해 논의를 주도해 나갈 예정이다.
최지영 기재부 국제협력관리관은 “납입자본금 방식으로 진행하면 개별국가별로 실질적인 자본을 내야하는 상황인데 외환보유액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개별 국가에게는 중요한 이슈가 된다”고 했다. 이어 “CMIM은 별도 기구 사무국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국이 협력하는 방식인데 국제기구 형태로 발전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 것인지 등이 회원국들에게 도전과제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CMIM은 아세안+3 회원국 내 위기 발생시 외화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 3월 출범했다. CMIM의 대출가능 규모는 최대 2400억달러로 IMF(약 1조 달러)와 비교해도 상당한 규모다. 그러나 자금 조달상 제약으로 한 번도 실제 지원이 이뤄진 바 없다.
그동안 다자 간 통화스와프를 통해 위기 시 자금을 마련해 지원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지만 실제 납입금이 없다는 점에서 위기 상황 발생 시 자금 지원이 불투명하다는 단점이 지적돼 왔다. 한국은 CMIM을 회원국 대차대조표와 분리된 별도 재원으로 운영해 자금조달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CMIM의 유효성을 높이자는 취지의 주장을 펼쳐왔다.
이 총재는 “CMIM이라는 보험이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는 현행 방식이 각국 경제 상황에 따라 재원 확보가 어려울 수 있어 불확실성이 높다고 판단해 다년간 기금화를 주장해 왔다”면서 “기금화에 대해 공감대를 이끌어내기만 해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아세안+3는 일본이 지난해 12월 제안한 ‘신속 금융프로그램(RFF)’도 신설하기로 했다. RFF는 자연재해와 같은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시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10년 만에 신설된 프로그램이다. RFF가 사용하는 통화도 엔화, 위완화 등 적격 자유 교환성 통화(FUC)까지 확대해 연내 협정문 개정을 완료하고 내년 회의에서 정식 출범한다는 계획이다. 현 CMIM 체계에서는 달러화만 공여 가능했다.
RFF는 IMF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유사한 신속금융제도를 통해 다수 회원국을 성공적으로 지원한 점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자연재해 등 발생 시 회원국의 대출제도 접근성을 높여 CMIM 실효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1세션에서는 역내 경제상황을 점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회원국들은 반도체 경기회복에 따른 수출 회복과 견고한 내수시장으로 아세안+3 경제가 양호한 성장률을 달성하면서 물가도 지속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원자재 가격 상승,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최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등이 위험 요인이라는 점에 공감하면서 현재의 긍정적인 전망이 미래 대비 정책여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또 회원국들은 개방적이며 자유롭고 공정한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다자간 무역 체제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내년 제29차 아세안+3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는 이탈리아 밀란에서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주재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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