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부풀려진 공모가를 잡기 위해 칼을 꺼내 들었지만, 상장 문턱만 넘으면 다시 뻥튀기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아무리 증권신고서를 정정하게 해봤자 어차피 수요예측 과정에서 고평가받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비싼 가격에 공모주식을 받은 뒤 상장 첫날 바로 팔아버리면 되기 때문에 증권신고서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는 자조 섞인 분석도 나온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에스오에스랩은 30일부터 기관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한 달가량 연기한다고 공시했다. 한 차례 투자 위험, 실적 추이를 자세히 담아 수정된 신고서를 제출했지만, 금감원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파두 사태 이후 상장 예비 심사를 한층 강화했다. 올해 증권신고서 효력이 발생한 기업은 총 22개사인데, 모두 1회 이상 정정 이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곳은 민테크, 디앤디파마텍 등으로 네 차례나 증권신고서를 수정했다. 이노그리드 또한 네 차례 증권신고서를 정정했지만, 아직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다.
정정 요구를 받은 기업들은 증권신고서에 미래 실적 추정치, 현재 사업 진행 상황, 향후 예상되는 위험 등 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추가한다. 과거 기술특례로 상장한 일부 기업들이 매출 추정치를 과도하게 산정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사례가 있어 이를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금감원의 노력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평가다. 공모가 산정 기능이 망가지면서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상단 초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올해 상장한 기업 중 HD현대마린솔루션을 제외한 모든 기업이 공모가를 상단 초과로 결정했다. HD현대마린 또한 상단 초과가 가능하긴 했다.
상장 첫날 공모주 가격 제한 폭이 60~400%까지 확대된 후 기관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주문을 내는 분위기가 자리잡았다. 기관 수요예측 기간을 2영업일에서 5영업일로 늘렸는데, 가점을 노리며 수요예측 첫날 상단 초과에 주문을 내는 게 투자 전략이 됐다고 한다. 공모주 중 하나일 뿐, 어떤 과정을 거쳐 상장한 기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는 증권신고서를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한 중소형 운용사 관계자는 “요즘 증권신고서, 투자 설명서 등을 보고 어떤 투자 위험이 있는지, 몇 차례 꺾어서 들어왔는지 등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얼마나 위로 쓸지만 얘기한다”며 “공모주 시장에 나가는 투자자는 없고 들어오는 투자자만 있다 보니 기업 가치나 사업 분별력을 따지는 게 의미 없는 분위기가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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