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가 법안 내용에 합의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이번에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이 행사되지 않고 공포될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들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1년 7개월 만에 법안 시행을 목전에 두게 됐다. 이들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부르는 이태원 특별법의 처리 과정을 정리했다.
지난해 4월 20일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등 야4당 의원 183명은 이태원 특별법을 공동발의했다.
2022년 1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약 2달 간 진행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정특위)가 여야 갈등 속에 ‘맹탕 조사’로 끝난 데 따른 보완 조치였다. 당시 야당은 국민의힘에게 법안 발의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지만, 국민의힘은 “이미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국회 국정조사 특위에서도 새로 밝혀진 것이 없다”며 불참했다.
발의 때부터 여야 간 이견이 갈린 이태원 특별법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 심사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가자 야4당은 지난해 6월 30일 이태원 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실제 처리까지 소관 상임위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숙려기간 60일 등 최장 330일이 소요되지만, 특정 정당의 반대를 넘어 본회의 상정을 할 수 있다. 아무리 늦어도 21대 국회 임기 종료(2024년 5월 29일) 전까지 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후 야4당은 처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당과 협의에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본회의에서도 특별법 처리를 시도했으나, 국민의힘의 강한 반발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상정 자체를 보류했다. 그러다 올해 1월 9일 열린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을 앞두고 집단 퇴장하면서 재석 177명 중 177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다만, 이날 통과된 법안은 김 의장의 중재안을 대부분 반영한 안이었다.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구성하되, 특별 검사를 임명하는 조항을 삭제했다. 법 시행 시기는 총선 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에서 총선이 실시되는 4월 10일로 조정했다.
특조위가 조사 대상자에게 자료 제출과 동행을 명령하고 이를 거부할 시 검사에게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는 권한은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 거부할 때’로 세부화했다. 특조위 활동기간은 원안과 같이 1년을 유지했지만 필요할 경우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는 추가 활동기간을 최대 9개월에서 6개월로 줄였다.
또 핵심 갈등 요소였던 특조위 구성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에 편향돼 있다는 여당 지적에 따라 11명의 위원을 ‘국회의장이 유가족 등 관련 단체 등과 협의해 추천하는 3명, 여당 추천 4명, 야당 추천 4명’으로 수정했다. 원안은 국회의장(민주당 출신)이 1명, 국민의힘 4명, 민주당 4명, 유가족 단체가 2명을 각각 추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여당 측 4명, 야당 측 7명의 구성이었다.
국회의장 중재에 따라 여야 원내대표가 협의를 한 법안인 만큼, 윤 대통령이 법안을 수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다소 존재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1월 30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특조위의 업무 범위와 권한이 과도해 위헌 소지가 있고, 특별조사위 구성 절차에 공정성·중립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게 주된 사유였다.
전날 이태원 참사 현장 앞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2시간여 동안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한 유가족들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이라며 분노했다. 공은 국회로 다시 넘어왔지만, 여야가 총선 이후 논의하기로 잠정 합의하면서 연기됐다.
4·10 총선에서 171석을 차지하며 대승을 거둔 민주당은 ‘총선 민심’을 내세우며 5월 임시국회에서 ‘이태원 특별법’ 처리를 예고하며 국민의힘을 압박했다. ‘독소 조항’이 많다며 특별법 처리에 비판적이었던 국민의힘은 결국 지난 1일 민주당과 법안 처리에 합의했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난 달 29일 첫 영수회담에서 이태원 특별법을 논의하며 일종의 합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야는 이견을 보였던 쟁점들에 대해 서로 양보했다. 우선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제30조 영장청구 의뢰권과 제28조 직권조사 권한을 삭제했다.
대신 국민의힘은 특조위 인원 구성과 절차 등에서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하며 물러섰다.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조사위원장 1명을 여야 ‘협의’로 결정하고, 여야 각각 4명의 위원을 추천하는 안에 동의했다.
합의의 경우 어느 한쪽이 완강히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지만, 협의는 임명을 추진할 수 있다. 국회의장이 민주당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주당과 유가족의 추천을 받은 인사가 위원장이 돼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셈이다.
극적 합의가 이뤄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수정안은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이태원 특별법의 일부 핵심 쟁점을 고쳐 양당 원내대표가 공동으로 대표 발의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재석의원 259명 중 찬성 256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참사가 일어난 지 551일 만이었다.
법안 통과 이후 유가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그렇게 외면하고 정쟁으로만 끌어서 1년 6개월 동안 유가족들을 힘들게 했는지 원망스럽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가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참사가 발생한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길 손꼽아 기다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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